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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보다 교육이다

2007-10-22기사 편집 2007-10-21 16: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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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북정상회담, 대통령선거 후보경선 등 굵직굵직한 뉴스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하고 끝난 국제행사가 하나 있다. 바로 지난 12일 ‘서울 선언문’을 채택하고 막을 내린 ‘세계 대학 총장 포럼’이다. 서울대·도쿄대·베를린공과대·라이스대·시드니대 등 5개국 7개대학 총장들이 서울대에 모여 대학의 미래를 토론한 작은 행사였지만 주제는 ‘대학의 자율성’이었다고 한다. 결코 작지 않은 화두(話頭)라 할 수 있다.

대학 나아가 교육에 있어서 자율성이 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느냐 하면 ‘서울 선언문’이 지적하고 있듯이 급격한 세계화와 정보화가 지속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기존 교육의 닫혀진 틀을 허물지 못하면 뒤처지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끊임없이 교육혁명을 추구하고 있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세계적 명문대학인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교에서는 이번 학기부터 신입생을 대상으로 자체 학력시험을 실시한다. 기존의 대학수능시험인 A레벨 성적으로는 변별력이 낮아 우수한 학생들을 가려낼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의 옥스브리지(옥스퍼드+캠브리지)대학에서 학생선발 방법을 바꾼다는 것은 혁명에 가까운 조치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교육의 평준화냐 아니냐를 놓고 10년이 넘도록 힘겨루기와 말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부(富)의 평균화와 함께 교육의 평준화는 현 집권세력의 핵심 정책이다. ‘강남’과 ‘서울대’로 대표되는 가진자의 부와 교육의 기득권을 어떻게 해서든지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부동산 값을 천정부지로 올려 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고, 학교의 공교육이 무너져 학생들은 학원으로 학원으로 몰리고 있다. 평준화를 부르짖는 전교조가 교단을 흔들고 나서부터 학교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질 좋은 교육을 찾아 외국행 비행기를 타는 학생들의 유학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대학의 고민은 더욱 심각하다. 인문계와 이공계는 학생들이 부족해 아우성이다. 기초학문이 서서히 무너져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 대학에서 제대로 훈련된 인재를 배출하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오죽했으면 기업총수 입에서 “불량 부품은 반품하면 되지만 사람은 반품을 받아주지 않으니 고민”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물론 이런 일들이 교육만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 것이다.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의 수많은 문제들이 얽히고 설켰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 중심에 교육이 자리잡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대통령 선거를 2개월 앞두고 각 당 후보들이 결정되면서 각종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민들의 관심이 경제에 쏠리다 보니 경제 분야가 특히 많다. ‘대한민국 747’(7% 성장, 4만달러 국민소득, 7대강국)이니 ‘4000만 중산층 시대’니 하며 국민들을 잘살게 해주겠다고 아우성들이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내용은 풍성한데 서로 엇비슷하다. 경제성장을 외면하는 어떤 후보도 없고 분배정책을 반대하는 정당도 찾아볼 수 없다.

교육에서만큼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3不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을 둘러싸고 찬반이 분명히 갈린다. 대학입시에서의 3不정책은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핵심이랄 수 있다. ‘교육규제를 철폐하라’, ‘교육기회를 차별말라’는 찬반양론은 지금 이 시대가 해결해야 될 핵심중 핵심과제이다. 대운하를 팔 것이냐 아니냐,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쳇바퀴 도는 논쟁보다는 ‘3不정책’을 놓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각 후보들이 한판 겨룰 것을 권유하고 싶다. 3不정책은 곧바로 교육 평준화와 교육 자율화 문제에 연결된다. 이 나라 백년대계(百年大計) 교육 나아가 국가장래와도 직결된다.

“교육은 사람을 목수로 만든다기보다 목수를 사람으로 만든다.” 371년 역사의 美하버드대 최초의 여성총장으로 취임한 드루 파우스트 총장이 지난 12일 취임사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 말은 20세기초 미국 대표적 지성의 한 사람이었던 뒤부아의 명언을 인용한 것으로 지금 우리나라 정치 및 교육 지도자들이 음미해야 할 말인 것 같아 재인용해 본다.(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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