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희 대전주부교실 회장

30여년 넘는 소비자운동으로 지역에서는 ‘소비자 운동의 대모’로도 불리고 있는 대전주부교실 송병희(70)회장.

그는 소비자 운동을 비롯 지역 내 다양한 사회활동으로 지역사회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왔으며 대전사랑 회원으로 활동하며 지역 사랑에 앞장서왔다.

지역 소비자들의 의식 변화와 권익 찾기에 30여년 동안 헌신해온 송 회장을 만나 소비자 운동을 비롯 다양한 얘기를 들어봤다.

-소비자 운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퇴직한 후 사회운동을 결심하면서 교육계와 가장 연관이 있는 단체를 택해 활동하게 됐다.

대전 주부교실은 1972년 교육 및 여성활동을 하기 위해 첫 둥지를 틀었다. 활동은 교육프로그램 운영이 대부분이었고 내용은 주로 ‘합리적인 가계운영과 주부의 역할’ 쪽에 맥을 맞췄다. 대전주부교실은 초창기 때부터 소비자 운동을 벌여왔다. 1974년 3월 소비자보호단체로 충청남도에 신고(신고번호 1호)하고 간단한 소비자 상담과 법률 상담을 맡았다. 이후 본격적인 소비자 운동은 1982년 경제기획원(현, 재정경제부)으로부터 소비자보호단체 협의회 대전고발센터로 지정되면서부터이다. 당시는 정부가 지방마다 단체 1곳을 지정해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고, 불량상품전시회, 소비자 상담, 물가조사 등을 하도록 했다.

-30여년 넘는 활동해온 탓으로 지역에서는 ‘소비자 운동의 대모’로도 불리고 있는데,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왔나.

▲‘대모(代母)’라는 말은 부담스럽다. 다만 오랜 세월 시민운동을 해왔고, 이만큼 나이가 되니 그런 말을 하는 모양이다. 지역의 어른답게 잘 처신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동안의 소비자 운동 전부를 얘기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다고 자부한다. 소비자 운동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1982년대에 소비자와 사업자간에 중재를 맡는 일이 참으로 어려웠지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노력하니까 저절로 일이 풀렸라. 사업자가 우리 단체를 고발해 실무자가 경찰에 불려가기도 했고, 법정에서 증언을 서 재판을 승소로 이끌기도 했다. 석유 품질검사를 위해 트럭에 매달려 서울(당시는 검사소가 서울과 광주만 있었다)까지 가기도 했다. 초창기는 발로 뛰고, 몸으로 봉사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는 데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했다.

-소비자 문제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고 있다. 어떻게 달라졌나?

▲과거 소비자문제는 ‘옷이 변형되었는 데도 교환해주지 않는다,’ ‘유통기한을 넘긴 식품을 먹고 탈이나 치료비를 배상받고싶다,’ ‘다른 판매점과 비교해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니 환불해달라’는 등 단순했고, 해결 과정도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시대가 변하면서 소비자가 시장경제의 주체로 서고, 또 소비자가 경제 흐름을 주도하는 세상이 됐다. 소비자 문제도 삐삐시대에서 휴대폰, DMB폰으로 변한 것처럼 범위도 커졌고 훨씬 복잡해졌다. 인터넷과 TV 등을 통한 상품 판매가 이뤄지는 등 상거래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해결도 어려워졌다. 소비자 상담과 처리를 위해 실무자들은 법률적인 지식으로 무장해야 하고, 다양한 방면에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해법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경찰이나 검찰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까지 소비자단체가 감당해야 할 때가 많다.

-요즘 소비자, 특히 주부들의 의식은 어떻다고 보는가?

▲과거에 비해 소비자 의식수준이 높아져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법적인 절차를 통해서라도 배상과 개선을 촉구하기도 한다. 아주 극소수 예이지만 시험 결과 또는 심의결과서를 내밀어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유통업계를 자극, 교환 또는 환불을 받아내는 소비자도 있는 데, 이들은 소비자 운동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성계가 어떻게 변했고, 앞으로 어떤 쪽으로 변화해야한다고 생각하나?

▲여성들의 고학력화가 지속되고 있어 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이 시급하다.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다시 사회 속에 서도록 하고,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위해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 장애우와 저소득층 가정, 한부모 가정 등 사회의 그늘에 가려 잘 보이지 않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는 소외계층을 사회의 중심으로 끌어내고 보듬어 안는 일 등은 여성계가 담당해야 할 몫이다. 외면상으로는 문제 없어 보이지만 아직도 우리사회는 여러 곳에서 불평등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처우와 승진 문제 그리고 금번 유통업계의 비정규직 대량 해고 등이 모두 불평등한 사회 조건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여성계가 힘을 결집하고, 의견을 공유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동안 큰 반향을 일으킬만한 조사를 많이 한걸로 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조사는 무엇인가?

▲과거에는 석유를 검은통에 넣어 가정에 배달했는 데, 용량 차이가 많다는 소비자들의 의견에 따라 석유 정량 검사를 실시, 문제가 있던 업체들에게 형사상 책임을 지도록 했다. 석유통은 검은통에서 용량이 보이는 흰 통으로, 더 나아가 계량통으로 바뀌도록 했다. 이동통신 통화 품질 검사와 관련 업체로부터 3개월 이상 시달렸지만 품질 수준을 높이는 단초가 됐다. 학원수강료와 아파트 관리비 실태조사를 실시해 당국이 발빠르게 움직이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관리비를 하향조정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등 셀 수도 없다.

-30년 넘게 소비자운동을 하면서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도 있나.

▲소비자기본법에 근거한 소비자피해보상규정과 관련 법률에 기초해 상담을 하지만 소비자 의사에 맞지 않는 경우 ‘그 자리에 왜 있냐?’,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이냐’ 는 등 예나 지금이나 소비자들은 본인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경우 막무가내식 의시표현을 하고 있어 상담원들이 상처를 많이 받는다. 지하상가 또는 일부 재래시장등에서 가격표시제를 잘 준수하지 않는 것도 여전하다. 오죽했으면 ‘표시된 가격, 부르는 가격, 살 수 있는 가격’ 등 이렇게 셋으로 분류해 조사하기도 했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어떤 일들이 시급하다고 보는가?

▲사회구성원이 우리 지역에 애정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로봇랜드 유치 등 지역현안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잘 된 일에 대해서는 칭찬에 인색하고, 안되면 단체장이나 지역의 리더가 무능한 것처럼 말하고 인식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또한 자발적인 봉사자가 더 많이 있었으면 한다. 소외된 이들을 진정한 가족으로 생각하고, 이들과 함께하려는 봉사자 더 많아야 사회는 행복한 것이다.

-소비자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소비자 운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선배로서 조언을 해준다면…

▲소비자 운동은 몇몇 사람이 하는 운동이 아니다. 소비자의 단결권이 거래환경을 바꾸는 귀중한 힘이다. 방관자적 자세가 아닌 적극적으로 소비자 운동에 동참해 달라. 소비자 보호법이 소비자 기본법으로 바뀐 것도 같은 취지에서다. 이제 소비자는 보호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시장경제의 주체임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

소비자 운동을 담당하고 있는 단체는 턱없이 인력이 부족하다. 시장조사와 소비자 상담을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지식의 폭을 넓혀가고 나보다 힘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주면 좋을 것이다.

-소비자 운동이 나아갈 방향과 과제를 짚어달라.

▲소비 환경은 더 빠른 속도로 변해갈 것이다. 시장구조도 더욱 복잡해질것이며 다국적 식품, 상품이 우리 식탁을, 우리 생활을 잠식해 들어올 것이다. 이 때문에 시대에 걸맞은 소비자 운동을 지향해 나가야 한다. 최근 광우병 위험 물질 함유 의심을 받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육점과 음식점에 쇠고기 원산지 표시를 하도록 돼 있지만 수입산이 국내산으로 둔갑돼도 구분이 어렵다. 금번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DNA 검사를 통한 판별법을 개발했는 데, 공조체제를 구축해 이를 검사해 발표하는 등 소비자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소비자 운동 과제는 소비자의 안전권 확보이다. 소비자의 안전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다양한 활동을 계획, 수행해야 할 것이다.

<글 원세연ㆍ사진 장길문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본문인용 등의 행위를 금합니다.>

원세연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