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진의 세상보기(7)

“쇼, 쇼를 하라, 쇼” 어느 이동통신회사의 광고카피다. 업종내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문구로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고만 있는 정치권에서도 주목을 끌기 위해 ‘정치 쇼’를 곧잘 벌인다. 각 정당에서 벌이고 있는 국민경선이란 것도 뒤집어보면 ‘쇼’라 할 수 있다.

한국 국민들은 내일부터 3일간 평양에서 벌어지는 남북정상의 ‘쇼’를 감상하게 된다.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남북 화해와 교류에 없어서는 안 될 통과절차이다. 정상이 만나는 것보다 더 극적인 남북관계는 없다. 그래서 국민들은 싫거나 좋거나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 그리고 노 대통령의 북한에서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관심과 주목을 던질 것이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국제 분위기가 그렇게 화창하지만은 않은 상태에서 평양으로 출발한다. 부시 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야만 정권”(brutal regime)이라고 비난했고, 북한과 시리아간 ‘핵 거래 설’이 터져 뒤숭숭하기만 하다. 게다가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은 북한 핵의 불능화(disablement)와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의 시기와 방법을 둘러싼 이견으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났다. 그나마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한에 2500만 달러어치의 에너지(중유) 제공을 지시했다는 뉴스가 나온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여하튼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육로를 통해 3·8선과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미수복지구인 북한 땅으로 들어간다. 이것만도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군사분계선(DMZ)을 걸어서 넘는다니 역사적 아니 세기적 ‘쇼’가 벌어진다고 아니할 수 없다. 냉전시대 때 국가보안법 사고방식을 대입하면 적성지역 잠입 죄에 해당하는 이 같은 금단의 행위를 노무현 대통령이 거침없이 해치우는 것이다. 분명 한반도 역사에 큰 족적으로 남길 쾌거라 할 수 있다.

DMZ를 지나면 곧바로 오른쪽으로 개성공단이 나타난다. 아침시간이라 어쩌면 개성공단에 출근하는 북한 근로자들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 일행은 이때부터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 장군 만세’ 등등의 정치구호가 적힌 붉은 현수막을 수없이 보게 된다. 나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민둥산도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

1992년 김일성 주석의 80회 생일을 기념해 만든 162km의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하는 곳은 평양 통일거리 입구에 있는 우람한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광장이다. 공식 환영행사가 개최되는 곳이다. 북한 측이 이곳을 공식 환영 행사장으로 삼은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조국통일 3대헌장은 김정일 위원장이 1997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라는 논문에서 정리해 명명한 것으로 ‘조국통일 3대원칙’(1972), ‘전 민족 대단결 10대강령’(1993),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1980)을 가리킨다. 바로 북한의 통일방안이다. 북한 측은 그동안 이 기념탑을 통일의 성소로 삼아왔다. 그러기 때문에 이곳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불쑥 나타나 노 대통령을 포옹하는 ‘깜짝쇼’를 벌일지도 모른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방북 때는 순안비행장에서 이루어졌다.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은 둘째 날인 3일 오후 두 차례 정도 이루어질 전망이다. 국제적 관심사인 북핵문제와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의제로 다루어질지, 다루어진다면 어느 정도일지 관심거리다. 6·15공동선언에서 낮은 단계 연방제와 국가연합으로 정리한 통일문제와 평화체제 문제는 어떤 수준에서 논의되고 합의할지 주목거리다. 북한식 표현으로 광폭(廣幅)정치를 즐기는 김정일이다 보니 의외의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정상회담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입심이 좋기로 소문난 두 사람 간의 말씨름이다. 2000년 때는 김정일 위원장이 주로 이야기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듣는 쪽이었다. 이번에는 좀 다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과연 어떤 ‘대못질’을 하고 돌아올지 궁금거리다.

이 규 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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