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에서 만난 환상의 풍경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강원도 평창 하면 메밀꽃이 먼저 떠오른다. 이효석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는 사람 조차 9월이 되면 메밀꽃에 이끌려 평창을 찾게 된다.

하지만 평창은 잠시 거쳐가는 여행객이 싫은 모양이다. 뻥 뚫린 3개의 고속도로(경부, 중부, 영동)는 의외로 걸음걸이가 더뎠다. 맑은 공기를 찾아 움직이는 도시인들이 많은 탓일까. 대전을 출발해 3시간30분만에 평창에 닿았다.

메밀꽃 축제로 더 유명한 효석문화제가 끝난 지 보름이 지났건만 평창은 번잡스러움을 피해 메밀꽃 구경을 나선 여행객들로 붐볐다. 눈을 즐겁게 하는 여행보다는 마음에 여유로움을 담아가고, 폐부에 달고 상쾌한 공기를 채우는 여행을 하자고 몇 번이고 다짐을 했건만...결국 자연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가장 아름다운 메밀꽃 풍경을 찾아 나섰다.

평창 어디를 가든지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을 만날 수 있지만 좀 더 운치 있고, 자연속에서 살포시 웃는 메밀꽃을 보고 싶은 마음에 주민들에게 물어 물어 무이예술관을 알아냈다.

폐교된 초등학교에 만든 무이예술관. 입장료(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를 받는 게 좀 거슬리기는 했지만 지역 문화예술을 위해 작은 정성을 보태는 일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무이예술관에서는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 서예가, 도예가, 조각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특히 30여년동안 메밀꽃만 그려왔다는 정연서화백의 작품속에서 허생원과 조선달, 동이가 바라본 소금밭같은 메밀꽃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효석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메밀꽃의 하얀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무이예술관을 둘러보고 나서다. 찻집으로 개조된 2층에서 바라본 메밀꽃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학교 담벼락 너머 산아래까지 이어진 메밀밭은 정말로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하얗다. 메밀꽃 뒤로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쭉쭉 뻗은 전나무의 푸르름은 절묘한 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태초의 흰색처럼 빛나는 메밀꽃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 평창의 산허리에는 벌써 가을의 흔적이 물들고 있었다.

<글·사진 한경수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본문인용 등의 행위를 금합니다.>

한경수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