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입문 계기를 살펴보면 크게 몇 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기업인·교수·법조인·자치단체장 등 각 분야 현직 재직 시에 전문성과 능력을 발휘하고 어느 정도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어 특정정당의 권유로 시작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정치인의 비서관 역할을 하다가 자신도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한번 앞장서 보겠노라고 직접 뛰어드는 경우다. 다음으로는 시민사회단체 등 각종 단체에서 활동을 하다가 제도권 내에서 제대로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다.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든가 ‘모두가 잘살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려고’라는 등의 정치입문의 변을 밝힌다.

부산 건설업자 김상진씨와 유착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부산의 한 카페에서 지인들을 만나 검찰의 수사 추이에 대해 의논한 사실이 방송사 카메라에 잡혔다. 단순히 위로를 하는 자리에서 오간 얘기라지만 참석자중 한 사람이 “잘만 버티면 홍보효과가 몇 억 원짜리냐”라고 말해 이번 사태를 오히려 정치적 홍보효과를 얻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비춰져 논란이 됐다.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데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즉 하늘이 도와준다고 생각했다는 게 아닌가. 남들은 밑바닥부터 발품 팔며 열심히 뛰어 다니는데 비해 잘만 마무리되면 단번에 만천하에 얼굴을 알리는 좋은 기회로 여기는 것이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혹시라도 제도권 정치에 처음 입문을 하겠다는 신인의 의식이 이렇다면 큰일이다. 정 전 비서관은 86년 학내시위로 구속돼 자신의 변호를 맡았던 노 대통령과 첫 인연을 맺어 끝까지 함께한 노무현 사단의 핵심 멤버로 총선에서 한차례 낙선한 경험이 있다. 누구보다도 깨끗함을 자랑하던 부류에 속한 인물이 아닌가. 사실여부는 법이 판단할 몫이지만 비리의혹에 연루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인의 참신성을 잃었다. 깨끗한 정치는 제도권 내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에 뜻을 두었을 때부터 깨끗해야 한다. 권모술수로 배운 못된 정치행태는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제도권 정치에 들어가서도 바뀌지 않는다.

우리 정치사에서 꼼꼼하게 의정을 챙기며 정치인답지 않다는 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일한 사람은 빛을 발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전문성과 의정활동을 인정받아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는 것보다 좋은 일이 됐건 나쁜 일이 됐건 가리지 않고 언론을 통해 얼굴을 알리는 일에 사활을 거는 정치인들도 있다. 투사라고 욕을 먹건 쇼맨십이라고 비난을 받건 이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TV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것이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선거운동이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라를 위해 더욱 큰일을 하려는 목표를 가진 정치인에겐 해당 지역구 주민들 이외에 전국적으로 얼굴을 알리는 방편으로 언론밖에 없기는 하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해 주리라는 생각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라도 이름만 알리면 된다는 생각은 아예 버려야 한다. 최고의 정책전문가가 돼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얼굴은 저절로 알려지게 된다.

정치권 주변에서 한때 몸담았다고 모두가 정치를 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행태만 보고 배운 사람은 어디를 가도 그 모양 그 꼴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정치권에 발을 내디뎌서는 안된다. 이제 막 정치를 해보겠다는 인사들이 청탁이나 들어주고 떳떳하지 못한 돈을 받아 챙긴다면 우리 정치는 희망이 없다. 한 푼이라도 합법적인 후원금을 받든지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어려운 서민들과 함께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쳐야 한다. 원대한 포부를 설파하며 얼굴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덕망을 쌓고 신뢰를 얻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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