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진 ‘세상보기’

가짜박사학위, 허위 학력문제로 시작된 신정아씨 사건은 이제 눈덩이처럼 커져 ‘게이트’로 수직 상승하더니 급기야 우리나라 최고 권부(權府)인 청와대를 초토화시키고 있다. 대통령 부인이 이례적으로 공개석상에 나서 시중에 떠도는 관련설 소문을 해명하더니 급기야 매년 청와대 참모 및 국무위원들과 갖던 대통령 생일만찬 계획이 취소됐다. 오죽했으면 PD하고만 얘기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이 강한 자존심을 꺾고 기자실에 내려와 “깜도 안되는 의혹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던 자신의 말을 바꿔 “난감하다. 할 말이 없게 됐다”고 기자들에게 고백(?)했을까.

청와대뿐만 아니다. 교육부·문화부·기획예산처 등 정부 부처를 비롯해 대학, 미술관, 미술단체, 은행, 기업, 불교계 등 ‘신정아 게이트’의 불똥이 어디로 튈까 전전긍긍하는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신정아가 언론에 대고 “변실장 정도가 배후라면 수없이 많다”고 했으니 잠 못 이루는 남자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변양균-신정아 게이트와 정윤재 비리관련 의혹사건으로 거의 아노미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청와대의 모습을 보면서 참여정부의 끝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조차하다. 단순히 레임덕 차원을 넘어서서 부실(不實)정권의 비참한 최후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닌가 착각마저 든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던 호기는 온데간데 없고 만신창이 상처만 남았으니 개혁정부의 마지막 모습이 이런 것인가.

청와대는 정권의 핵심이다. 나라의 모든 정보가 집합되고 최종 판단이 내려지는 곳이다. 그래서 정부 권력기관 뿐만 아니라 모든 부처의 기강을 바로잡고 인사를 검증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는 부서까지 두고 있다. 그런데 정작 안에서 벌어진 독 깨는 일은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으니 청와대가 심각한 부실에 빠져 있었다고 아니할 수 없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근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이른바 386실세들의 통치철학과 스타일에서 비롯됐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민주 대 반민주, 친미 대 반미, 개혁 대 보수 하는 식으로 내편 네편으로 갈라놓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명쾌하기는 하나 항상 불안한 법이다. 어디 세상의 일이 둘로만 갈라지는가. 이렇다보니 내편은 항상 예쁘게만 보이고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신정아 게이트에서 청와대가 내편인 변양균 실장의 입만 바라보고 사건에 대처하다보니 급기야 거짓과 허위의 구렁텅이에 빠진 것이 아니겠는가.

신정아 게이트는 우리에게 권력 비리의 실태를 또다시 일깨워준 사건이랄 수 있다. 우리사회에 만연된 ‘빽’의 위력이 어느 정도까지인가를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동국대 교수채용에서부터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선정에 까지 ‘윗선’의 부탁은 절차까지 무력화시키고 그대로 통과되었다. 박사학위가 의심스럽다는 문제제기도 묵살되었고 능력을 검증해야 된다는 의견도 무시되었다. 어디까지인지 다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예술작품 구입에 인색하던 은행과 기업이 ‘권력’의 입김을 확인하자마자 수천만원대의 미술작품을 부르는 값으로 수십억원 어치나 사들였다.

또 한가지, 모든 스캔들과 비리사건의 뒤에는 권력과 여자와 돈이 얽혀 있다는 속설을 그대로 입증해주고 있다. 변양균과 신정아의 부적절한 관계가 신정아가 ‘공상허언증’(空想虛言症)에 빠지는 결과로 까지 발전했지 않았나 하는 것이 정신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신정아가 언론에 연락해 자기변명을 늘어놓은 내용을 분석해보면 자신의 거짓말과 허위행각을 스스로 믿어버리는 ‘공상적 거짓’(pseudologia fantastica) 현상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가짜 예일대 박사학위와 권력 배후가 출세도 시켜주고 돈도 벌어주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최근 매일매일 신정아 게이트와 정윤재 사건으로 도배질하다시피 하는 신문들을 보고 있노라면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이명박’도 사라지고 작년보다 대폭 오른 ‘재산세’도 사라졌다. ‘신다르크’(신정아의 ID)의 유령이 서울 하늘에서 사라지는 날은 언제일까.

이 규 진(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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