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수수료에 관한 인하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국책연구원에서 이제까지의 태도를 바꿔 원가산정방식을 변화시켰더니 수수료율을 인하할 여지가 있다고 발표하고, 공청회도 열었다. 또 이해당사자의 얘기도 듣고 간이사업자를 주된 인하대상으로 하겠다는 방침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 동안 정부는 형평성도, 공정한 기준도 없이 카드사가 맘대로 폭리를 취하도록 방치해 왔다. 카드사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고율의 수수료를 속수무책으로 징수당해 왔던 영세사업자들의 분노가 폭발하자, 이제서 인하조치를 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카드사들도 지은 죄(?)가 있다는 것을 아는지 ‘수수료인하가 대세’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여러 변명과 항변을 통해 수수료율 인하폭을 최대한 적게 하고 그것도 연말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현실화한다는 것이다. 여론의 압력에 마지못해 나선 금융당국이나 카드사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금융당국과 카드사들의 개선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 까닭은 4가지이다.

첫째, 그간 반발이 크면 수수료율을 내렸다가 관심이 줄어들면 다시 올리는 방식을 되풀이했기 때문에 이번 조치도 그런 미봉책의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둘째, 카드사업은 카드사끼리의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된 시장이 아니라 정부당국의 각종 인허가권에 묶여 있는 독과점 시장이기 때문에 카드사들의 원가산정은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원가산정 작업이 공정하게 추진되고 경제상황 변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요율책정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이런 장치 없이, 국책연구원의 보고서 하나를 근거로 수수료 인하를 결정하겠다는 태도는 아직도 정부당국이 카드사들의 이익보호에 급급하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카드사용액이 한 달에 21조원, 일 년에 240조원을 상회하는 현재 시점에서 카드사들의 수익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돼 있다. 따라서 정부당국은 형식적인 공청회를 만들어 여론을 수렴하는 시늉을 한 뒤 일시적인 호도책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는 제도책을 내놓아야 한다.

셋째, 카드수수료 인하대상은 간이과세자로 한다는 것은 영세사업가맹점들의 화급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 같지만, 더 많은 가맹점에 대해 부당한 현행 고율의 수수료율을 유지하기 위한 분열책에 지나지 않는다. 당국과 카드사들은 영세사업자들의 수수료를 인하함으로써 생색도 내고 카드수수료 인하운동의 동력도 무력화하겠다는 속셈이다.

넷째 인하시점을 연말 대선을 바로 코앞에 둔 11월에 하겠다는 것은 매우 정략적 계산이 앞선 것이다. 대선과정에서 이슈화되는 것을 일단 피하고, 대선 이후의 상황 변화를 보며 대처하겠다는 카드사와, 책임론에서 벗어나려는 정부당국의 속셈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따라서 가장 급한 조치로 지금 즉시 카드수수료를 2% 내외로 인하해야 한다. 내수시장의 장기침체에 따라 매일매일의 생존에 허덕이는 영세사업자들을 위한다면, 이 일부터 우선해야 한다. 그 이후에 카드사와 정부당국, 가맹점 대표, 전문가, 공익대표 등이 참여하는 요율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소모적인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요율심사위원회에서 카드사들의 원가자료를 제출받아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만든다면, 어느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카드수수료가 독과점 시장의 독과점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이나 이코노미스트들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된다는 논리로 진실을 은폐해 왔다. 이 거짓말이야말로 시장경제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짓이다. 그간 카드사들의 폭리를 보장해 온 정부태도는 국민을 위한 신용정책이 아니라 카드사들의 이익보호에만 급급했던 것임을 말해준다.

이런 제도개선은 현행 여신전문업법을 개정하여야 가능하므로 5대거품빼기운동본부에서도 9월 정기국회에 법개정안을 제출할 것이다. 정략적 공방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8월 이내에 인하조치를 조속히 취하기를 기대해본다. 이태복<전보건복지부장관·5대거품빼기운동 중앙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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