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갤브레이스의 ‘불확실성의 시대’는 과거 200년 동안의 세계 경제와 경제이론을 지은이 특유의 시각으로 들여다본 명저다. 지난 시대의 경제 사상이나 현상 속에 있었던 확고한 확실성을 현대가 직면하고 있는 엄청난 불확실성과 대비한다는 의미에서 붙인 제목이다. 이후 불확실성이라는 어의는 미래를 예측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메타포로 쓰여왔다. 그 불확실성은 한국 정치, 특히 선거판에서 두드러졌다. 5년 전 바로 이맘 때 누구도 대선 승리자를 예상하지 못했다. 10년 전에도 그랬다.

외형적으로 보자면 올 대선은 과거와는 확연하게 차이난다. 치열한 경선 끝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대선 후보로 선출한 한나라당은 정권 탈환이라는 염원에 다가선듯 보인다. 실제로 이 후보는 현재 50% 안팎의 지지율로 순항 중이다. 이른바 범여권으로 불리는 통합신당과 민주당은 별도의 리그에서 경선 레이스에 뒤늦게 돌입했다. 그마저 후보 각각의 지지율이 10%대 이하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결 양상을 ‘골리앗’ 대 ‘난쟁이’로 비유해도 무리는 아니겠다. 하나마나한 게임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돌아가는 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유권자 2명 중 1명은 이 전 시장을 지지하면서도 ‘여유있게 당선될까’라는 질문에 이르러서는 고개를 숙인다. 반면 범여권 후보들은 거침없는 행보다. 조바심 속에 불안해하는 한편과 지나칠 정도로 자신만만한 다른 한편의 모습을 보며 안개 속의 살얼음판을 떠올리는 것도 부자연스럽지 않다. 예외없이 되풀이되는 대선 정국의 예측 불가능성, 이런 불확실성은 어디서 비롯되는걸까.

이쯤해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성경 속의 강국 블레셋은 거인 골리앗을 앞세워 이스라엘을 침공했지만 양치기 소년 다윗의 한방에 무너졌다. 무기는 골리앗의 이마를 명중시킨 물맷돌이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제 아무리 절대 강자라 해도 자만하면 승리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준다. 고도 압축성장 시대를 거쳐온 이 후보가 깨끗한 돈, 건강한 경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할 때 골리앗으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일찍이 범여권의 한 캠프에서 회자된 적이 있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보다 많은 것을 시사한다. 동화는 여왕에게 학대받던 백설공주가 일곱 난쟁이의 도움으로 행복을 찾는다는 줄거리다. 그러나 원작의 모티브는 전제정치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연민과 죄책감을 갖고 있던 공주가 반란군과 손을 잡는다는 내용이다. 대립과 갈등을 소재로 만들어진 우화다. 범여권 입장에서는 달콤한 시나리오다. 그러나 국정 파탄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없이 제2, 제3의 난쟁이를 노래하고, 기대하는 모습은 섬뜩하기만 하다.

거인과 난쟁이 신화는 시대나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왔다. 강자의 대명사인 거인은 다윗에게 쓰러지는 골리앗처럼 더러 응징의 대상이 되곤 했다. 반대로 난쟁이는 인간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구원하는 상징으로 묘사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숨가쁜 대선 가도에서 만나게 되는 거인과 난쟁이의 의미는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음습한 의도에 따라 유권자의 혼란을 유도하는 또 하나의 불확실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인과 난쟁이는 범여 후보 단일화와 이 후보 검증, 남북 정상회담, 노심(盧心)과 김심(金心)등의 변수로 춤추고, 유권자에게는 엄청난 혼란으로 다가올 것이다.

갤브레이스는 말했다. “너무도 많은 것이 불확실한 시대이기는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진리에 우리들은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는 불확실성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방안으로 민주주의와 지도력, 결단을 들었다. 케네디 같은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이야말로 불확실한 시대를 헤쳐나갈 등대와 같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끝없는 ‘불확성실’의 혼돈과 미몽 속에서 어떻게 ‘확실성’을 찾아낼 것인가. 대선을 앞두고 눈을 부릅떠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신용<정치행정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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