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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명예는 곧 직원의 명예

2007-09-05기사 편집 2007-09-04 16: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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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경남 함안에 사시는 구태옥 옹이 61년 전 중학생 시절 무임승차했던 운임을 뒤늦게 갚아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구태옥 옹도 일제치하에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광복이 되면서 비로소 꿈에 그리던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시 구 옹은 해운대역 인근에 살고 계셨는데, 학교가 있는 부산진역까지 가는 열차를 4개월 동안 무임승차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으며 필자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반세기도 훨씬 지난 지금에 와서 그가 운임을 갚은 건 왜일까. 현재 교회 목사로 재직하고 계시는 구 옹께서는 “지금까지 살면서 잘못한 일을 한 가지씩 회개하는 심정으로 무임승차 운임을 변제하게 됐다”고 밝혔다지만, 그래도 의문이 속 시원히 풀리지는 않았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 그냥 기억 속에 묻은 채 넘겨버렸을 것이다.

필자는 그 이유가 ‘명예’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지키는 명예가 아니라 자신에게 떳떳해지기 위해 지키는 명예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번 일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이벤트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르긴 몰라도 살면서 그 순간처럼 가뿐했던 순간은 없었으리라.

명예에는 개인과 집단이 따로 없다. 기업에게도 명예가 있기 마련이고, 기업의 명예는 소속된 직원들 한명 한명의 명예와 직결된다. 그래서인지 기업이미지나 경영성적이 좋은 기업에 다니는 직원들은 어깨도 당당하게 펴고 다니고, 회사 배지도 자랑스럽게 붙이고 다닌다.

필자가 직원들에게 유난스럽게 명예를 강조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적자 기업의 직원은 어디를 가도 어깨를 펴지 못한다’며 자구노력의 필요성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높아지곤 했다. 사실 코레일은 소위 ‘만년 적자 공기업’의 대명사가 아니었던가.

물론 지난해에도 수치상으로 엄청난 적자를 냈지만, 중요한 것은 뚜렷하게 적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정부에서는 ‘코레일은 2006년에 9300억원 정도의 적자를 내는 것이 정상이다’라고 했다. 4조 5000억 원에 달하는 고속철도 건설부채에 대한 이자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선로사용료로 연간 7500억원 가까이 지출하고 있는 형국이니 공공성을 감안해 90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예상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비용절감과 수익증대 등 자구노력으로 4000억 원 넘게 적자를 줄인 것이다. 정부 경영평가에서 꼴찌를 면한 것은 물론이다. 우리 직원들조차도 믿지 못했을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만 유지된다고 해도 코레일은 조만간 정상적인 경영이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수치상으로 나타난 성과도 중요하지만 더 가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직원들의 명예가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적자 공기업 직원’이라는 꼬리표를 무슨 천형(天刑)처럼 달고 다녔던, 그래서 항상 주눅이 들고 기를 펴지 못했던 우리 직원들이 아니었던가.

애당초 잘못된 재무구조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큰 성과를 내고 있는데 일반인들은 그러한 사정을 잘 알지 못한다. 최근 언론에 ‘코레일은 5000억 원의 적자를 내고도 1인당 평균 400만 원씩의 성과급을 받았다’고 대서특필된 적이 있다. 솔직히 서운하고 억울했다.

만약 2000억 원의 적자를 내고 있던 회사가 이듬해 2000억 원의 흑자를 만들어냈다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고 대서특필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거의 1조 원에 가까운 적자를 예상하다가 5000억 원 정도로 적자를 내는 일은 큰 변화임에도 주목을 끌지 못한다. 그 점이 상당히 아쉽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노력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순간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코레일 직원들에게 인생은 짧고 명예는 길다. 직원들의 자신감 넘치는 눈빛에서 온전한 명예회복이 멀지 않음을 느낀다. 이 철<코레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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