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많은 한국의 대학들 가운데, 소위 명문학교는 주로 서울이나 해외에 모여 있으며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학생들은 그곳으로 유학(留學)을 하여야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특이한 선입관은 사실은 그 역사가 상당히 짧다고 볼 수 있다. 세계화의 진입과정에 있어서, 과학기술과 사회의 발전을 촉진하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는 기존의 근대국가형의 조직을 초월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21세기에는 환경·교통·자원의 문제를 안고 있는 수도권보다는 보존과 개발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지방이 지적 영역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진다.

자녀에게 최고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려는 한국의 부모들의 모습이 오늘날의 사회적 현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에 서원(書院)은 지방에 산재하였으며, 인문학과 실용과학전통을 결합하는 실학(實學)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대전지역에는 숭현서원(崇賢書院)과 송준길(宋浚吉)이 지은 동춘당(同春堂)과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남간정사(南澗精舍)가 있는데 이들은 대학교와 유사한 교육기관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전국적으로 훌륭한 제자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전지역에 있는 우송대학교·대전대학교·한남대학교 등을 서울대학교나 하버드대학교에 뒤떨어지지 않는 학문의 메카로 만드는 일은 새로운 일이 아니고 옛날 전통의 부활로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 동안 일부 왜곡된 역사의 현장 가운데, 근대화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한국 사람들은 서원을 후퇴하는 조선시대의 상징으로 보았지만, 실은 현재의 과학기술이 세계를 변모시키는 과정에서 문화·인정·윤리를 소중히 하고 있는 한국전통이 더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방의 서원들은 19세기 말 근대화에는 걸맞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21세기의 세계화에는 서원의 전통이 딱 알맞은 것으로 생각된다.

세계화 다음 단계에서는 단지 세계 대도시와 세계 정상 간의 네트워크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전문가·교사·미술가·시민 사이의 좀 더 종합적이고 섬세한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성립될 전망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지방자치단체·지방대학교·시민들이 중심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상상력을 발휘해서 서원의 전통을 부활시키면 한국의 지방에서 차세대 학문이 나올 수 있다고 확신한다.

미래 한국의 지방대학교는 조선시대에 꽃핀 학문적 전통을 계승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대에 윤리적인 요청과 균형 잡힌 경제발전을 염두에 둘 때, 미래의 한국 지도자들은 서원의 전통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지방대학교가 다시 한 번 한국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다면, 서원의 풍부한 전통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우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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