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진의 세상보기

요즘 정부의 중앙부처는 ‘기자들과의 전쟁’으로 어수선하다. 기자실 방을 빼달라느니, 나가지 못하겠다느니, 무슨 전월세 계약을 한 것도 아닌데 연일 30도를 넘는 늦더위 못지않게 그 싸움이 뜨겁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참여정부가 정권차원에서 밀어붙이고 있는 이른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때문이다. 국정홍보처가 총대를 메고 청와대가 뒤에서 독려하고 있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란 것은 알고 보면 ‘언론자유 후진화 방안’에 다름 아니다.

우선 기자실을 모두 없애고 통합 브리핑룸을 두어 취재지원을 선진화하겠다는 것은 취재기자들의 동선(動線)을 브리핑룸에 묶어 두어 자유로운 취재를 방해하겠다는 얄팍한 꼼수에 불과하다. 브리핑룸을 단순히 정부 각 부처 당국자들이 언론에 정책을 설명하는 장소가 아니라 기자들이 취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따르면 기자들은 정부 각 부처의 사무실을 함부로 드나들 수 없게 되어 있다. 기자가 공무원을 취재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사전에 대변인실 같은 홍보부서에 취재목적과 취재대상을 밝히고 면담신청을 해야 한다. 전화취재 할 경우라도 홍보부서를 통해야 가능하다. 그리고 면담허가를 받더라도 접견실 같은 장소에서만 취재해야 한다.

이렇게 기자들의 취재시스템을 강제하게 되면 취재대상, 취재내용 등 기자들의 모든 활동내역이 공개된다. 사실상 기자들의 손발을 묶는 결과를 가져온다. 어느 공무원이, 어느 취재원이 이렇게 공개된 상태에서 기자들의 취재에 응할 것이며 은밀한 내용을 폭로할 수 있겠는가. 국가 권력의 부정부패는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가 없으면 외부로 폭로되지 않는다. 권력은 내부고발자를 사전에 경계하고 사후엔 끝까지 색출해 내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국정홍보처가 밀어붙이고 있는 선진화 방안은 언론의 생리와도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조치이다. 취재기자들은 시간과의 싸움을 벌인다. 사건현장을 지키고 있어야 생생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고 정부정책의 내막을 파헤쳐 독자들에게 실체적 진실을 알려야 사회정의의 문지기(gate keeper)역할을 할 수 있다. 취재기자들은 마감 시간에 피를 말리며 특종 경쟁을 무한대로 펼친다. 이같은 현실에서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언제 공문을 보낼 것이며 어떻게 브리핑룸만 쳐다보고 있을 수 있을 것인가. 국정홍보처의 선진화 방안은 결국 닭에게 모이 주듯 기자들에게 정부가 던져 주는 정보(브리핑 내용)만 갖고 보도하라는 것과 같다. 최대의 정보생산자이고 보유자인 정부가 정보를 갖고 횡포를 부리겠다는 심산이다.

제일 무서운 것은 기자등록제이다. 정부기관을 상대로 취재하고자 하는 기자들은 모두 국정홍보처에 등록하라는 것이다. 한국의 언론 상황을 35년전 유신시대로 되돌려 놓으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마저 드는 처사다. 유신독재정부는 72년 모든 기자들에게 이른바 프레스 카드라는 ‘보도증’을 발급했다. 당시 문화공보부가 사이비 기자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기자의 신분증을 직접 발급했다. 보도증이 없으면 기자로 인정되지 않아 취재할 수가 없었다. 취재통제수단으로 프레스카드를 발급한 것이다.

정부가 발급하는 프레스카드는 국제사회에서 통제언론·후진언론의 대명사로 통한다. 5共시절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이었던 필자가 한국대표로 국제기자연맹(IFJ) 총회에 참석해 프레스카드 문제로 호되게 당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언론자유를 위해 프레스카드 폐지 투쟁을 벌이라는 주문이 쏟아졌다.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취재기자에게 정부가 일종의 취재자격증(혹은 신분증)을 발급한다는 것은 후진 언론의 극치이다. 참여정부의 국정홍보처는 한발 더 나아가 ‘기자용 출입증’에 전자칩을 내장하는 시스템을 추진한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취재기자의 일거수 일투족(一擧手 一投足)을 감시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언론자유는 ‘권력으로부터의 자유’(Press freedom from government)를 의미한다.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언론의 사회적 기능이다. 권력이 언론자유의 핵심인 취재의 자유를 속박하면 언론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출범초기부터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과의 전쟁을 줄기차게 벌여 왔던 참여정부가 임기 말에 와서 기자들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그 배경이 무엇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이 규 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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