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빚는 사람들 - ① 가야금 명장 표태선씨

언제부터인가 국악기가 서양악기보다 귀해졌다. 서양악기점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국악기점은 흔치 않다.

서양음악에 비해 우리 음악에 대한 관심이 덜해지면서 국악기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민족음악인 국악 역시 여전히 서양음악의 2중대(?)다. 국악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악기장’이란 이름의 ‘우리 소리를 빚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올 곧은 전통음악 사랑과 혼을 불어 넣는 장인 정신을 조명해 본다.

“혼을 불어 넣고 정성을 들여야 심금을 울리는 높고 깊은, 은은한 소리가 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리가 탁하지요.”

명인국악기 대표 표태선씨(47·대전 중구 문화동)는 ‘혼으로 가야금을 만든다’고 강조한다. 열아홉살에 우리 전통악기 만들기를 시작해 28년동안 한 우물만 파고 있다. 표씨는 우연한 기회에 들어선 ‘악기장의 길’을 ‘운명’이라는 결론 짓는다.

그는 거문고, 아쟁, 해금, 양금, 철 가야금 등 줄이 있는 현악기는 모두 만든다. 지금은 연주되지 않는 와공후, 소공후 등도 재현해 놓았다.

표씨는 “경제적으로 늘 넉넉하지 못하면서 30년간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우리악기를 만드는 것은 사명감 때문”이라며 “좋은 악기를 만들려는 일념으로 작업에 몰입하다보면 즐거움과 보람도 커 일상의 어려움은 잊는다”고 말했다.

85년 서울에서 이사해 대전에 정착한 표씨는 대전생활만 22년으로 이제 대전 토박이나 다름이 없다. 대전·충남에서 유일하게 전통 현악기를 만드는 장인인 만큼, 그의 작업장도 국악인은 물론 지역 음악인들이 자주 찾는 명소가 됐다.

현악기는 기술 못지 않게 나무와 줄이 소리를 결정 짓는 중요한 요소다. 좋은 나무를 구하면 ‘명기’ 만들기의 절반은 성공이다.

조선초기 학자 김일손은 좋은 거문고를 가지고 싶었으나 좋은 나무가 없어 미루다가 어느집 사립문으로 쓰던 나무를 얻어다 거문고를 만들었다거나, 조선조 어떤 학자는 주막집을 지나다가 구유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그 구유를 구해다가 거문고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나무의 중요성을 강조한 일화들이다.

가야금의 공명통인 윗판은 오동나무, 밑 판은 밤나무를 주로 쓴다. 오동나무는 척박한 산에서 마디게 자라 나이테가 촘촘한 것이 가장 총다. 이런 오동나무를 구해 눈·비를 맞히면서 2-3년 자연 건조한 후 또 그늘에서 여러해를 말려 그중에서 상품만 골라 쓴다.

자귀와 대패를 이용해 위판 다듬기가 끝나면 인두질을 한다. 인두질은 칠을 대신하고 해충 침투를 막는 효과가 있다. 다음은 밤나무로 밑판을 만든다. 밑판은 해와 달 모양의 구멍을 뚤어 소리가 잘 울리도록 한다. 위판과 밑판 사이에 졸대를 대고 아교풀로 붙인후 모양내기를 위해 가야금의 머리 부분에 용두장식을 한다. 소 뼈와 나무를 활용해 쌍희(囍) 무늬 등 다양한 장식을 한다. 줄을 걸기 위한 현침과 용두 구멍 뚫기, 안족을 배치한 후 여러줄의 명주실을 꼬아서 만든 현을 걸고 음을 맞추면 공정의 대단원은 막을 내린다.

표씨는 현악기 작업과정을 미로 찾기에 비유를 한다. 같은 악기를 수도 없이 만들어 왔지만 늘 어렵고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늘 배우는 마음가짐으로 소걸음식 작업을 한다.

표씨는 “조카(27)가 전통악기 전수자로 나서 힘이 될 뿐더러 혼자 일할 때보다 외로움이 덜하다”고 말했다.<변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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