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저항세력에 잡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살해된 지 3년이 지났지만 국민들은 아직 그의 마지막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또 아프가니스탄 바그람기지의 동의부대에 파견된 윤장호 하사가 폭탄테러에 희생돼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와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것도 불과 수개월 전의 일이다. 이번에는 23명이나 되는 한국인들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피랍돼 국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피랍과 관련 사이버상에서는 인터넷 강국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일이 일어나고 있다. ‘사이버 폭력’의 수준을 넘어 ‘사이버 살인’이 횡행하고 있다. 포털사이트마다 위험지역임을 알면서도 봉사활동을 떠난 그들을 비난하고 정부를 향해 협상도 하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두라는 글들을 서슴없이 올리고 있다. 심지어 피랍자 중 한 사람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아프간 관련 게시물을 악의적 내용을 담아 영어로 번역 국내외에 유포시키는 등 저급한 인터넷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악플러들의 행동이 비난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이 OECD 국가 중 1위였다. 비록 2005년에는 2위로 내려앉고 지난해에는 4위로 떨어졌지만 국민들의 자부심은 여전히 대단하다. 우리의 생활에서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인터넷이지만 편리함만큼 드리워진 그늘도 짙다. 가장 심각한 ‘그늘’은 바로 도를 넘어서는 악의적 댓글들이다. 댓글은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이버 민주주의’라고도 불린다. "인터넷 댓글공간은 새로운 가치와 기존의 가치가 교차하고, 때로는 서로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역동적인 곳이며, 이곳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문화들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까지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악플’이 아닌 ‘선플’일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다. 인터넷 댓글문화의 정착을 위해 정부와 학교, 각종 포털들에서는 그동안 꾸준히 캠페인을 벌이고 ‘선플’달기 운동도 추진하고 있지만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인터넷 여론은 이제 무시 못 할 힘으로 등장했다. 네티즌들의 결집된 의견은 정부정책으로 반영되고 사회운동으로까지 확산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많았다. 그러나 특정인을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을 정도의 무지막지한 악플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서로 얼굴을 맞대지 않는 비대면(非對面) 커뮤니케이션 공간이라는 속성을 이용 무자비한 인신공격과 집단적 몰매로 상대를 망가뜨린다.

사회 현안에 대한 각종 토론들을 보더라도 건전한 의견개진은 찾아보기가 극히 드물다. 편가르기, 말꼬리잡기는 그래도 얌전하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온갖 욕설과 인신공격을 퍼부어 댄다. 이러다보니 합리적인 의사소통과 그에 따른 생산적 합의 도출은 사라지고 치유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은 감정의 골만 생겨난다. 선거철이 되면 후보의 지지자들간에 벌어지는 공방 또한 가관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극단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 다양한 의견개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이버세상에서 의사소통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만남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이버세상은 현실사회에서 자신의 얼굴을 내세우며 감히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었다. 각계각층으로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도 어디까지나 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한다.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인터넷 보급률에 걸맞게 이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인터넷을 제대로 활용해 훌륭한 사이버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이 아닐까. 김윤석<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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