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권위주의 정부시절, 육사출신의 장군들과 서울대 법대 출신의 일부 법조인들을 지칭하여 ‘육법당’이라는 말이 세간에 회자되었다. 이는 권력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으나,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들 위에 군림하는 높은 권세를 희화화한 표현이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으로 일컫는 구체제를 부정하기 위해서 일어난 시민혁명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구체제의 핵심은 법관귀족이었다. 중세를 거쳐 근세에 이르기까지 농촌을 중심으로 하는 봉건경제체제가 붕괴되면서 도시가 만들어졌고, 도시는 시민들에게 ‘자유’라는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었다. 가내수공업이든, 무역이든 열심히 일하면 일한대로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기반으로 하여 자신의 발언권이 커가기를 바라는 새로운 계급인 ‘시민’이 생겨났다. 그들은 부와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세상은 변화되었지만, 법관귀족은 여전히 왕족 등 일부의 특권계급만 보호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2003년 봄, 권부의 상징인 청와대에서 사법개혁을 할 것인지, 하지 말것인지 일대 논쟁이 있었다. 과거 YS 정부의 세계화추진위원회, DJ 정부의 사법개혁위원회로 이어지는 사법개혁의 오랜 진통이 특별한 성과없이 끝난 뒤의 일이었다. 거의 대다수의 대통령 참모들은 반대하였다. 그렇잖아도 거대 야당의 정권 흔들기에 대처하기도 힘든데, 우리 사회의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법조집단과의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무리라는 이유였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으나, 이제는 매 정부마다 단골처럼 거론되던 사법개혁론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그런 참여정부의 사법개혁론이 법원과 검찰 그리고 변호사 단체의 합의를 토대로 열매를 맺고 있다. 그중 단연 압권이 ‘로스쿨’ 제도의 도입이다. 지금처럼 법조인을 사법시험이라는 단방(單方)에 의존하여 선발하는 제도에 대한 일대 전환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로스쿨 졸업하는데 드는 비용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돈 없는 사람들이 촛불밑에서 독학으로 합격했던 미담을 곁들이면서 말이다. 제법 고민을 한 사람이라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의 질과 수준을 걱정하기도 한다.

충분히 귀담아 들을 만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이는 본질이 아니다. 우수한 학생임에도 학비가 걱정된다면 국가가 해결해 주어야 한다. 교수의 질이 문제라면 시행기간이 상당히 남아 있으니 우수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대학에는 기회가 없다. 그러나, 촛불밑에서 독학으로 합격한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미담이어서는 아니된다. 헌법과 법률의 이름으로 사람의 목숨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진 법관은 그냥 직업이어서는 아니된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철학을 겸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젊디 젊은, 열심히 공부해 사법시험 패스한 것 빼놓고는 나보다 나을 것이 없는 법관에 의한 심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시민들은 더 이상 없다. 대통령도 원고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법 현실에서 정말로 시민들이 인정하고 그 판단을 받아들일 만한 자격을 갖춘 법관을 양성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서 비롯된다.

라틴어 Universitas 를 어원으로 하는 대학(university)의 원래 의미가 ‘우주와 사회 그리고 전체’를 의미하는 것은 대학이 교양인을 배출하는 전당이기 때문이다. 대학 자체도 많은 변화와 개혁을 하여야 하지만, 대학은 그 태동에서 그러했듯이 민주사회에 걸맞은 교양인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 교양인의 토대위에 법률지식으로 연마한 법관이 2015년 즈음에 배출될 대한민국이 기다려진다. 로스쿨을 준비하는 대학들이 고민하여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박범계<변호사·前사법개혁추진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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