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잃어도 의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치료가 시작되면 통증이나 이상반응이 나타난다. 이를 명현반응(瞑眩反應)이라고 부른다. 이를 느낀다는 것은 비정상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그래서 명현반응은 정상(正常) 회귀로의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의학에서 비롯된 이 용어는 사회적인 현상이나 개인의 각성과정을 설명할 때 원용되기도 한다.

후유증 예견됐어도 제도도입

노사협상의 주체는 사용자와 근로자다. 그런데 이번 대전 시내버스운송사업조합과 노조가 벌이는 임금협상에서 노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협상테이블에서 사용자측의 의견은 거의 없다. 있다면 대전시의 눈치만 보며 시 의견을 전달하기에 급급한 파행뿐이다. 돈줄을 쥔 시가 보따리를 얼마만큼 푸느냐가 주된 관심사가 됐다. 돈줄의 제도적 끈은 버스준공영제다.

버스준공영제란 버스 운행은 업계가 맡고 시가 수익금도 관리하는 제도로 요약된다.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업계의 적자를 보전해줌으로써 전반적인 서비스 향상을 유도하겠다는 것이 목적이다. 대전에는 지난 2005년 7월부터 시작됐다. 도입이전부터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철저한 준비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별다른 준비 없이 덜컥 제도만 도입하면 후유증이 클 것이란 경고도 있었다.

시는 부랴부랴 시행에 들어갔다. 재정지원은 곧 서비스향상과 직결된다는 마음만 급했지 부작용 최소화 장치는 없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초라해지는 성적표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업계의 적자를 시가 보전하는 것이 버스준공영제의 뼈대다. 그렇다고 매년 재정지원을 늘리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도입 첫해 115억원, 다음해 257억원, 올해 예상치 290억원. 이건 아니다. 지원을 줄이면서도 서비스는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와야 상식이다. 대전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적자를 시가 메워준다니 업계로서는 땅 짚고 헤엄치기나 마찬가지다. 적자의 원인을 면밀하게 분석해 구조조정이 필요하면 구조조정하고 운송원가를 절감하는 등의 경영개선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러나 업계는 적자보전만 믿고 자구책마련에는 소홀했다. 만약 업계가 준공영제의 취지를 제대로만 살렸다면 노조와의 임금협상에서 이처럼 초라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시의 처분보다는 사용자다운 당당함으로 노조와 협상을 벌였으리라고 본다.

이런 마당에 버스파업이 장기화에 돌입하니 대체로 부정적으로 규정된다. ‘상처뿐인 영광’ ‘책임전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이전투구(泥田鬪狗)’ 등이다. 협상이란 모름지기 윈윈전략이 기본이건만 ‘나 살고 너 죽자’식이다. 이 지경에 이른 사태의 원인을 상대에게서만 찾는다. 협상타결을 위한 양보도 찾아보기 힘들다. 세금은 세금대로 내가며 며칠째 고생하는 시민들만 애꿎다. 심기 불편해진 시민들의 버스파업사태에 대한 종합평은, 듣기 거북스럽겠지만 이전투구다.

합병증 원인균 속히 제거해야

대전의 버스장기파업사태는 합병증에 따른 전신마비다. 원인균은 시의 성급한 제도도입과 관리부재, 업계의 자구책마련 소홀과 도덕적 해이, 노조의 형편을 고려치 않는 요구 등이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는 식으로 비중의 다소에 대한 이견은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독소를 제거하지 않고 복용했으니 어찌 탈이 나지 않겠는가. 늦었지만 이제라도 치료를 서둘러야 한다. 이런 생각조차 갖지 않는다면 결과는 뻔하다. 회생의 전조인 명현반응을 느낄 겨를도 없이 관(棺) 신세를 져야할 것이다.

준공영제가 도입된 이상 시와 업계, 노조는 파트너다. 현재처럼 상대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려는 식의 넉다운 게임은 바람직한 파트너십 형성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 오히려 공멸을 자초하는 지름길이다. 문제는 그 와중에 죄 없는 대전 시민들의 고통만 가중된다는 것이다. 대전버스시스템에 활력을 주기위해 처방했으나 ‘마약’으로 변한 준공영제에서 하루 빨리 치명적인 독소를 빼내야 한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본문인용 등의 행위를 금합니다.>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