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저녁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인과의 대화’는 “성에 안 찬다”는 그의 말마따나 지켜보는 국민과 기자들 역시 성에 안 차는 토론이었다. 우선 일부 토론자는 언론계, 기자사회에 대한 대표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노 대통령을 제외한 토론자 5명 중 인터넷언론 대표가 두 명이나 되고 프로듀서가 나왔는가 하면 언론관련 시민단체 대표가 나옴으로써 ‘현안’에 대한 토론이 제대로 이뤄질까라는 의문을 시작부터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의문을 입증이나 하듯 신문시장 점유율, 포털사이트의 인터넷뉴스 독점문제 등 초점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하거나, 처가집의 성(姓)을 밝히면서 개별 민원까지 제기하는 등 상식에 벗어난 말까지 나와 알맹이 없는 토론으로 전락했다. 대표성을 가진 언론인들이 나오지 않아 속빈 강정 같은 토론이 예상되면서도 노 대통령이 이를 강행한 이유는 정부가 홍보할 길은 국정브리핑밖에 없다고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 생방송되는 토론형식을 통해 자기생각을 전하려 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 됐다.

기자실담합 옛날에 사라진 일

알찬 토론이 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신문 3~4개를 묶어 ‘언론’이라고 말함으로써 다양한 컬러를 가진 대다수 언론매체가 천편일률적인 논조를 가진 것처럼 인식하는 오류를 안고 시작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신문들이 신문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긴 하지만 모든 언론매체가 노 대통령 생각대로 담합을 일삼거나 기자실에서 죽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이번 토론에서 이런 인식을 고집하진 않고, 강경한 톤으로 말하지도 않았지만 근본적인 생각이 바뀐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기자들 얘기를 조금만 귀 기울여 들어본다면 담합이 사라진지 오래됐을 뿐더러 담합을 생각해도 되지 않는다는 걸 금세 알게 된다. 또 기자들이 기자실에서 느긋하게 죽치고 앉아 있고 싶어도 그럴 시간이 없다. 언론환경과 시스템이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기자사회에 대한 기초상식이 없더라도 요즘 신문과 방송뉴스의 주요기사들이 저마다 다르다는 점을 유의했다면 이런 주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실 기자실 유지여부 문제는 서울과 과천만의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전만 해도 기자실이라고 할 만한 공간을 가진 기관은 대전시청과 충남도청, 충남지방경찰청, 정부대전청사 정도이다. 9개 정부외청이 한군데에 모여 있는 정부대전청사는 청사를 설계할 때부터 통합기자실 한 군데만 만들었으므로 정부의 ‘언론 선진화조치’에 포함시킬 필요조차 없다. 대전지방법원, 대전둔산경찰서 등지에도 기자실이 있다지만 기자실이라고 할 수도 없는, 거의 쪽방 수준이다.

기자들이 각급 정부기관, 공공기관에 가는 것은 정보가 모이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기자들에게 기자실은 이런 현장의 ‘최전방 기지’이다. 정보공개가 원활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잘 소통된다면 굳이 기자실에 갈 필요가 없다. 노 대통령 말대로 정보공개를 확대하겠다면 브리핑룸을 통폐합할 게 아니라 오히려 늘려서 언론매체의 접근성을 늘려 주는 게 마땅하다. 정부 조치는 정보공개가 제대로 안 되는 현실에서 기자들의 베이스캠프를 없애버림으로써 기자들을 현장에서 내쫓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정보 있는 현장서 기자 내쫓나

이번 조치의 배경에는 정부가 발표하는 것만 기사거리라는 생각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현장에서 쫓겨난 사회부기자가 길거리를 헤맨다고 해서 현장취재가 아니며, 경제부기자가 시장만을 뒤진다고 해서 제대로 된 기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번 조치로 기자를 피하고 싶어 하는 공무원들과 공사를 따내고 싶은 업자만 좋은 일 시키게 됐다. 국민의 세금을 쓰는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은 기꺼이 감시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정부는 억지로 이번 조치를 강행할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공무원들의 자세를 바꾸도록 하는 게 예비비 명목에도 맞지 않는 55억 원의 예산을 절약하고 보다 선진화된 사회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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