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국립대전현충원은 적요합니다. 이따금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 소리는 적막감을 새삼 깨쳐줍니다. 수런거리는 나무들의 합창이 ‘장엄미사곡’처럼 묘역에 긴 울림을 던집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장렬히 산화한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이 묻힌 이곳에도 녹음이 짙어갑니다.

4일 아침 이른 시각 5명의 참배객을 만났습니다. 일가족인 그들은 어느 묘비 앞에서 술을 따르고, 절을 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있던 소녀도 부축을 받고 내려와 인사를 하더군요. 묘비명의 주인공은 1986년 사망한 육군 일병이었습니다. 스물 안팎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간 이 젊은이는 21년째 영면하고 있고, 가족들은 또 이렇게 찾아와 참배를 하고 있습니다. 묘비마다 세월이 갈수록 켜켜이 쌓이는 사연의 두께,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심의 깊이를 어찌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대전현충원에만 묻힌 분들이 8만278명입니다. 국가원수와 임정 요인, 애국지사에서부터 국가 유공자, 군인, 군무원, 경찰에 이르기까지…그러나 묘소에 안장된 이들은 3만9015명 뿐입니다. 그보다 많은 4만1233명은 위패 봉안돼 있습니다. 유해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지요. 이처럼 산하를 떠도는 넋이 13만입니다.

현충탑의 글귀는 보는 이의 가슴을 파고 듭니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시적이지만 잠언으로도 읽혀지는 건 웬일일까요. 후손의 무심함을 질책하는 것 같아서지요. 해와 달보다 호국영령을 지키고 보살펴야 할 사람은 오늘의 ‘우리’가 아닐까요. 그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도약도 상상하기 어려웠겠지요.

선진국에서 일상처럼 만나는 것이 참전용사와 전사자를 기리는 기념물입니다. 런던 중심가에는 2차 세계대전 전사자 기념비가 있고, 파리 개선문에는 1차 세계대전 참전 무명용사를 기리는 ‘영원한 불꽃’이 1년 내내 꺼지지 않습니다. 모스크바의 젊은이들은 결혼식을 마치고 크렘린 궁 근처의 무명용사 묘지를 가장 먼저 찾는다지요. 미국 버지니아주의 알링턴 국립묘지는 전몰장병 기념일(Memorial Day)이 되면 헌화하는 참배객들로 거대한 물결을 이룹니다.

미군 실종자·포로전담사령부(JPAC)는 매년 유해 발굴을 위해 1억 달러가 넘는 돈을 쏟아 붓습니다. 400여명의 최정예 군인들이 세계 곳곳의 미군 전투지역에서 조사·발굴 작업을 합니다. 지난 4월에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 땅에서 숨진 미군 유해 6구를 송환했지요. ‘그들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를 모토로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용사들과 그 가족들을 예우하는 것입니다.

국민의 무관심도 그러려니와 북 눈치보기·퍼주기에 급급한 정부의 태도에 생각이 미치면 답답해집니다. 지난 94년, 억류 43년 만에 조창호 노병이 국군포로로서는 처음으로 탈출해 귀향했지요. 이후 다른 송환 뉴스는 듣지 못했습니다. 비전향장기수들은 ‘인도적’ 차원에서 잘도 북으로 올라갔지요. 2000년부터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했지만 북한과 베트남 지역은 여전히 ‘성역’입니다. 29일로 5주기가 되는 서해교전 희생자 가족의 눈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무관심과 정부의 냉대 때문입니다. 편가르기에 바쁜 지도자와 정부는 6·15 남북공동선언일에는 또 한번 화려한 쇼를 펼치겠지요.

국민 10명 중 7-8명이 전후세대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호국보훈의 정신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저희들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참전용사와 전사자, 유족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당연히 국민의 몫이 아니겠습니까. 최소한 그걸 전후세대가 알아야 합니다. 현충일 아침입니다. 이제 묵념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송신용<정치행정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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