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국대사관이 마련한 미·일안보관련 세미나의 한 일정으로 지난 25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현 마부니 언덕에 있는 ‘평화의 초석’을 방문했다. 중학생 2백여명이 추도식을 올리고 있었다.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에 이어 학생대표가 추도사를 읽었다. 학생의 음성은 떨렸고 많은 학생들의 표정에서는 ‘무엇’인가 굳은 결의가 읽혀졌다. 식이 끝나자 기다리던 타학교 학생들이 대신했다. 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학생들이 대기해 있다.

주변국 분노케하는 행위 계속

지난 1995년 6월 23일 제막된 평화의 초석은 오키나와 전투와 관련된 전몰자의 이름이 담긴 각명비(刻銘碑)다. 이 비에는 23만 9000여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출신지는 오키나와와 일본 타지방, 미국·영국·북한·대만 등이다. 지금까지 각명된 한국인도 346명에 이른다. 국적에 상관없이 추도대상으로 삼았다. 바로 이점이 자국의 군인·군속만을 대상으로 삼은 야스쿠니신사의 현창(顯彰)의 논리와 대비된다. 그래서 강렬한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추도시설로 평가된다.

평화의 초석을 마주보는 곳에는 ‘오키나와현 평화기념자료관’이 자리한다. 각종 자료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평화를 기원하겠다는 취지로 건립됐다. 자료중에는 기념관 운영협의회가 지은 시가 눈길을 끈다. “오키나와전을 접할 때마다...어떠한 사람도 전쟁을 긍정하거나 미화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큰 대가를 치르고 얻은 확고한 우리들의 신조입니다” 자료관에 전시된 모든 자료나 평화의 초석 등이 전해주려는 내용을 요약한 듯하다. 전쟁을 증오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다짐이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외국인, 특히 군국주의 일본에게 막대한 피해를 본 한국인 대부분은 이 외양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겉모습이 일본의 진정성이 아니라는 우려감 때문이다. 우려감은 피해의식의 발로만은 아니다. 일본 극우주의자들이 보여주는 현실이 그렇게 만든다. 오키나와 교직원조합과 평화단체 등은 최근 일본정부가 오키나와 전투의 역사를 왜곡한다고 비난했다. 문부과학성이 고교 교과서 검정에서 오키나와 전투에서 발생했던 주민집단자결에 일본군의 ‘강제’가 개입했다는 내용을 삭제하도록 요구한 것이 발단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45년 6월 오키나와 남서부의 야에야마(八重山) 열도 주민들이 악성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산악지대로 ‘강제퇴거’ 당했고 3600여명이 희생됐다. 1998년 오키나와현 지사가 혁신계에서 보수계로 바뀌자 이른바 ‘신평화기원자료관 전시수정사건’이 발생했다. 보수계 지사는 전시내용이 ‘반일적’이며 ‘국책을 비판하는 것’이란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자 ‘강제퇴거’와 ‘퇴거’가 ‘피난명령’과 ‘피난’으로 수정됐다. 섬 주민과 조선인이 비행장 정비에 동원됐다는 내용도 삭제됐다. 결국 비난 여론이 비등했고 일본 정부는 군명(軍命)을 인정했다.

진정한 반성은 엿보기 힘들어

한국인 시각에서 이런 일본의 역사왜곡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면 과언일까.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태도, 야스쿠니신사에 총리의 참배 또는 공물 봉납이 일본 극우위정자나 신보수파들의 저의를 읽게 한다. 일본 참의원은 교전권을 부정해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헌법의 개정을 규정한 ‘국민투표법’을 통과시켰다. 일본이 결국 제2차 세계대전 전으로 회귀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증폭시키는 대목이다.

일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오키나와 나하공항에 들어섰다. 이날도 학생들이 북적였다. 수학여행을 오는 모양이다. 이 학생들도 평화의 초석 앞에서 추도를 할 것이고 앞으로도 이런 행렬은 계속될 것이다. 만약 동북아 국가들을 긴장시키는 일본의 신보수주의 사고와 역사왜곡 등이 학생들의 뇌리에 주입된다면 평화의 초석 앞에서 학생들은 과연 ‘무엇’을 결의할까. 생각하면 섬뜩하기만 하다. 역사의 진실을 말하지 않는 한 평화운운은 위장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본문인용 등의 행위를 금합니다.>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