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최종편집일 : 2017-10-24 11:49

선언과 출사표

2007-05-29기사 편집 2007-05-28 19:29:54

대전일보 >오피니언 > 외부기고 > 지난 칼럼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폴라로
  • 핀터레스트

큰 걱정거리가 있던 한 사람이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기만 하면 집을 팔아서 그 돈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 주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그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선뜻 그 많은 돈을 내놓으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을 은전 한 냥에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집과 함께 사는 조건으로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를 만 냥에 내놓은 것입니다. 결국 그 집은 은전 한 냥에, 고양이는 만 냥에 팔렸습니다. 그는 집을 판 은전 한 냥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답니다. “만세!”라고.

2007년 12월 19일.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치릅니다. 이맘 때가 되면 많은 이들이 대권 도전을 위한 출사표를 던집니다.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밝혀 임금께 올리는 글을 출사표라고 하지요. 또한 출사표는 중국의 삼국시대에 촉나라의 재상 제갈량이 위나라를 토벌하러 출병하면서 후왕에게 바친 상소문입니다. 따라서 출사표를 던진다는 말 자체가 잘못된 말일 것입니다. 국어사전에서도 출사표란 ‘출병할 때에 그 뜻을 적어서 임금에게 올리던 글’이라고 되어 있지요.

어찌되었든 선거철만 되면 국민들에게 유난히 약해지는 것이 정치인들이니, 선거가 끝나기 전까지는 우리가 그들의 임금인 셈입니다. 따라서 이때에 쓰인 출사표란 말은 올바로 쓰인 표현은 아닐는지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표와 연관되니 말입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상황이 어찌되는지요. 더 이상 국민들은 그들의 임금이 아닙니다. 그들이 내놓은 수많은 공약은 앞서 이야기한 우화처럼 허망한 것이 되고 맙니다. 놀라운 선언을 하는 사람일수록 뒤에 숨겨놓은 것이 많은 것처럼 말입니다.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작품 ‘미래소년 코난’의 장면들이 생각납니다. 때는 미래, 인류는 과학의 남용으로 파멸되고 소수만이 살아남습니다. 어느 날, 코난은 표류해 온 리나를 구하게 되고, 태양 에너지의 비밀을 알고 있는 악당 레프카와 싸움을 벌입니다. 미래소년 코난이 지금의 애니메이션과 구별되는 점은 그들의 싸움 방법에 있었습니다. 수 많은 영화들 속의 주인공들이 첨단 과학무기를 장착하고 있는 반면, 코난의 무기는 그의 힘과 창 뿐이었습니다. 또한 자신과 목숨을 걸고 싸우던 상대방이 높은 곳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손을 내밀어 그를 구하기도 합니다. 악당은 죽는 것이 아니라, 악당이 줄면 선량한 사람이 늘어납니다. 즉 악당이 선한 사람이 되는 방식 말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 하나, 기다려 달라는 코난의 약속을 믿고 배가 물에 잠기는데도 그 자리에서 코난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리나와 그를 구하러 온 코난과의 대화, “늦어서 미안해. 겁났었니?” “아니, 조금도. 코난은 온다고 하면 반드시 오니까.”

싸움이 없는 선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싸움을 하더라도 정정당당하게, 승패가 끝난 후엔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면 좋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앞서 이야기한 우화의 주인공처럼 허망한 공약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닌, 진정 대한민국이라는 큰 배를 지구라는 바다에서 난파하지 않도록 잘 이끌 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리나의 코난에 대한 믿음처럼 국민 모두에게는 믿음을 주고, 우리는 그를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지도자를 만나면 참 좋겠습니다.

이태관<시인>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본문인용 등의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