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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수 감사들’ 남미行이 남긴것

2007-05-23기사 편집 2007-05-22 18: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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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과 공공기관의 감사 21명이 ‘혁신포럼’을 갖는다며 은밀히 남아메리카로 떠났던 일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이들이 중도에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하는 모습이 보도된 뒤에도 비난의 화살은 이들을 감독할 의무가 있다는 기획예산처로까지 파급되는 등 여파는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또 우리가 남미 국가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는가라는 다소 생뚱맞은 논란도 유발하고 있다.

이 ‘혁신여행’을 떠났던 사람들 중에는 대덕 연구개발특구 내 일부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비롯해 대전지역에 있는 공공기관 감사들도 포함돼 있다. 그중에는 과거 대전·충남지역의 집회·시위현장, 선거유세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인물들도 있다. 역대 정권을 부도덕한 정권이라며 거세게 비난하고 진압경찰과의 충돌을 마다하지 않던 사람들이 거꾸로 간단치 않은 도덕성 시비에 휘말리게 됐으니 아이러니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南美에서 혁신토론 이유 궁금



가까운 제주도나 일본, 좀 더 나아가서 중국이나 태국 정도로만 결정했어도 이 같은 파문은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비행기 타고 가는 데만 만 하루가 넘게 걸리는, 지구 반대쪽이라는 남미대륙을 굳이 혁신여행의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우선 이들이 가까운 나라들은 물론이고 좀 더 먼 유럽까지도 이미 다녀왔기 때문은 아닐까. ‘찬바람 피할 데 없는’ 재야(在野)에 있을 때에는 잦은 해외여행을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기관장과 위상차가 별로 없어 1.5인자라고 불리는 자리에 ‘낙하산’타고 내려와 감사 자리에 앉으면 웬만한 유명 여행지는 자주 다녀올 수 있는 모양이다.

기왕 공금으로 출장 명목을 달아 가는 여행, 비싸고(1인당 1440만원) 쉽게 갈 수 없는 좋은 곳으로 가자는 데 의기투합했을 것이다. 게다가 일부 기관은 당사자인 감사 전결로 여행경비 집행이 가능했다니 기가 차다. 더욱이 남미대륙과 이과수 폭포는 예년에도 감사들이 혁신포럼을 연다며 갔던 곳이라니 그곳에 이들을 사로잡았던 뭔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인은 물론 언론인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는 점도 한 가지 이유로 작용했을 법하다.

경우는 달라 보이지만 재벌총수의 보복폭행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이들은 여행계획을 취소했어야 했다. 재벌총수가 보복폭행에 나설 때 자신이 사법기관 신세를 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총수라는 권력 때문에, 자신이 형성해놓은 ‘네트워크’ 때문에 수사 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주저 없이 나섰다고 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예상과 달리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그는 민도(民度)가 점점 높아지고 우리 사회가 합리성을, 합리적 법치를 최우선시하는 사회로 서서히 변모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거에 대중의 인식이 바뀌는 문화혁명(중국의 문화혁명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같은 사건이 없었다며 아쉬워하는 인사들도 있지만, 지속적인 경제발전이 이뤄지면서 사회문화와 제도도 소리 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인식했어야 했다. 즉 현재의 문화와 제도가 20년 전 그것들과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의 인식여부와 관계없이 20년간 문화와 제도는 발전하거나 혹은 변화한 것이다.



합리적 법치사회 지향 인식을



이번 혁신여행 사건으로 인해 좋았던 공공기관 감사 시절은 막을 내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본다. 차기정권이 들어선 뒤든 아니든 감사들이 정권에 부담을 주는 이 같은 사고를 칠 가능성을 봉쇄하는 제도가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좀 더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사회로 가는 벽돌 하나가 놓이는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1일 공공기관 감사 109명이 참석한 감사 간담회에 참석해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내내 싸늘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문제가 된 감사 21명의 따귀라도 올려붙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자리를 지키지 않았을까. 혼자 해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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