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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칫국부터 마시는가

2007-05-21기사 편집 2007-05-20 17: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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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동해선 열차의 ‘시험운행’ 탑승객들이 눈시울을 붉히고, 감격의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너무 서두르는 사람들에게 경고삼아 던지던 옛 속담이 생각났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그 한마디. 시험적으로 한번 기차를 운행해 본 것뿐이고, 기차는 멀리 가지도 못하고 좀 가다 돌아왔다. 어느 신문은 “시험운행이란 꼬리표가 붙긴 했지만, 분단의 경계를 가로지른 경의선·동해선 열차는 한반도의 고립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짓누르던 거대한 장벽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라고 했다. 이건 좀 지나친 표현이 아닌가.

그 열차에 탑승한 리영희 모 대학 명예교수는 감격한 나머지 한마디 하였다고 전해진다. “평북 삭주가 고향인데 중학교 1∼4학년을 서울에서 다니며 방학 때 고향에 갈 때마다 경의선을 탔다. 그때 경의선은 일제가 조선과 만주를 수탈할 목적으로 건설, 운영하는 열차였지만 오늘 이 열차는 한반도 평화를 지속시키고 유럽까지 뻗어가 민족의 번영을 물질적으로 가져오는 그런 열차로 탈바꿈하게 해야 한다”라고 했다.

북은 반세기만에 이루어진 남북간의 열차시험 운행을 짤막하게 보도했을 뿐이라는데 왜 우리만 야단법석을 해야 하나.

리 교수가 그토록 감동한 일이라면 북의 김정일도 몇 마디는 해야 마땅한 것 아닌가. 김정일이라는 자를 나는 만난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얼마나 잘못된 인간이었는지 나는 북에 살아 본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리 교수는 천관우 씨와 친분이 있어서 오래 전에 몇 번 만난 적도 있다. 군사독재 하에서는 함께 민주화 투쟁을 하는 동지로 지내기도 했다. 그가 옥중에 있을 때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 내 기억에 리 교수는 장례식에 나오지도 못했다. 그때 나도 그 댁을 찾아가 문상한 일도 잊혀지지 않는다. 뒤에 ‘7억 인구와의 대화’라는 중국에 관한 책을 펴내면서부터 우리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게 된 것이다. 누구와도 그리고 어떤 문제를 가지고서도 남들과 대화하는 것을 나는 꺼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과의 대화는 어렵다 못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스탈린이나 모택동이나 김일성과도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당신은 공산주의의 실정을 몰라서 그러니 좀 더 공부를 해가지고 오라고 나는 일러준다. 공산주의를 겪어 본 사람들은 그들과의 대화가 가능하다고는 믿지 않는다.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자신의 외교정책을 요약하면서 “말은 부드럽게 하라. 그러나 큰 몽둥이 하나는 들고 다녀라”라고 했다. 모든 외교에 있어서 국력이 매우 중요한 중에도 “목적을 위하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믿는 공산주의자들을 상대함에 있어서는 경제력이나 국방력으로 만든 큰 몽둥이 하나를 들고 다녀야 한다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본인도 천명했듯이 리 교수는 평북 삭주 출신이라는데, 가족이 그곳에 계속 살았었다면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을까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어머니는 월남하여 그 아들이 모시고 있었던 것이라면, 그의 모친은 왜 위험한 38선을 넘어 월남한 것일까.

이번에 이 휴전선을 넘나드는 열차의 시험운행도 북에서는 별로 의욕이 없는 걸 남쪽에서 조르다시피 하여 겨우 합의를 본 모양이다. 이것이 진정 남과 북의 장벽을 헐어버리는 위대한 행사라고 하면 남북이 모두 박수하고 환호해야 마땅한 것 아닌가. 북의 2000만 동포는 휴전선을 넘나드는 열차가 임시운행을 했다지만, “한반도의 허리뿐 아니라 마음까지 짓누르던 거대한 장벽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북의 동포들은 아무런 느낌도 없다는데 왜 우리만 춤을 추며 야단스러운가.

제발 경솔하게 굴지 말라. 그 열차의 탑승객 중에 리 교수 비슷한 사람들도 있나 본데 ‘진보적 지식인들’이여, 착각하지 말라. 김정일은 응할 생각조차 않는 그런 일, 이를 테면 경의선·동해선 개통 같은 일에 매달리지 말고 김정일의 마음을 바꾸어 볼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라. 김칫국부터 마실 일이 아니다. 큰 몽둥이 하나를 먼저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지 않을까.<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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