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는 사람마다 시간을 느끼고 감지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연구했다. 그는 존재와 시간이라는 저서를 통해 사람들이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이 시계로 시간을 구분하고 측정하는 방식과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냈다. 듣기 싫은 수학시간이 그토록 길었던 것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다보면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는 일 모두가 타당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사랑의 방법과 형태·종말은 시대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과거 사랑을 주도적으로 리드하는 쪽은 남자였고, 중세 유럽의 규수 대부분은 남성들의 사랑을 기다리느라 젊음을 소진했다. 교통수단이 변변하지 못했던 만큼 연인들이 만나는 장소도 강변의 물방앗간이나 동네어름의 골짜기에 국한됐다. 만남을 주선해주는 중매인의 개입없이도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된 것도 큰 변화다. 물론 이런 환경이 조성된 것은 20세기 초반, 그것도 세계1차대전이 끝나는 무렵부터다.

늘어난 기회·강화된 자기결정권

사랑의 환경 변화는 곳곳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는데, 우선 연인들의 나이가 상향화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근대 유럽문화와 사상을 연구해온 스티븐 컨(Stephen Kern)은 유럽의 소설속 남녀주인공들 나이를 분석한 결과 19세기에 19.7세였던 여자주인공의 나이가 20세기에는 28.6세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후의 소설과 현실에서는 연인들의 연령대나 이성의 수가 더 복잡다단해졌다. 중년의 사랑도 영화나 드라마·소설의 주제가 되기에 이르렀고, 우리나라에서도 2002년 노인들의 성을 다룬 `죽어도 좋아`란 영화가 개봉된 바 있다. 이제 나이가 사랑의 장애요소가 되는 일은 없게 됐다는 전제이기도 하다.

빼놓을 수 없는 또하나의 변화는 당사자 선택권의 확대다. 신분 혹은 부모 주도의 혼사가 세력을 잃어가고 결혼은 오롯이 본인들의 의사결정과정이 된 것이다. 억지 결혼을 해 평생을 회한과 눈물속에 보내는 일도 없어졌고,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과 사는 것에 환멸을 느껴 생을 마감하는 비극도 크게 줄어들었다.

잘못된 선택임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것도 사랑방정식의 큰 변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재혼커플비율이 1995년 13.4%에서 2005년 25.2%로 2배가량 증가했다. 전체 결혼 커플 4쌍 가운데 1쌍이 재혼이라는 계산이다. 눈여겨 볼 점은 과거보다 재혼을 결심하는 기간이 짧아졌다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 이혼이나 사별 후 1∼2년 안에 재혼을 결심한다.

사랑의 책임과 의무 되새겨 봐야

외국인과의 결혼도 크게 늘어났다. 농림·어업 종사 남성들이 외국인 신부를 맞이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10건의 결혼 중 1건 이상이 국제결혼이다. 상황을 더 복잡하게 하는 것은 우리사회가 동성간의 사랑과 결혼도 자기선택의 일부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성 결혼 합법화나 트랜스젠더 호르몬치료비의 의료보험화는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나 저항은 무뎌져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랑의 환경은 많은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고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흘러왔고, 또 그런 방향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문제는 자신의 사랑개념에 집착한 `일탈자에 대한 배제`와 사회적 낙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유아의 보육과 교육·가정의 기능회복과 강화를 위한 사회와 국가의 부담은 더욱 강조·증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족과 남녀의 풍속 변화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제도와 법제도 일정부분 손질이 필요하다. 편견의 해소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자신과 다른 형태의 사랑이나 가족의 삶을 `비정상`으로 보지 않고 `이해하며 받아들이려는` 열린 마음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정상의 개념을 확대재생산하자는 의미에서다.

지금은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축복이다. 그러나 책임회피로 야기되는 가정파괴, 사랑이란 미명하에 행해지는 폭력·유기·방임·학대·무관심 등은 그 도를 넘고있다. 자유롭게 사랑하게 된 만큼 그에 걸맞은 책임과 배려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가정의 달인 5월 우리 모두가 되새겨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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