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흔들리니까 야당도 흔들린다. 오늘처럼 여당이 무너지고 깨어진 마당에 득을 보는 것은 야당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2시간 남짓 달려야 하는 마라톤 선수는 추적하는 자가 가까이 있어야 더욱 열심히 달리게 되고 그래야 기록도 좋아지는 법이라고 한다. 경쟁자 없이 혼자 뛰면 기록은 대개 저조하게 마련이다. 정치에도 그런 논리가 적용된다. 여당 없는 야당은 외롭기 그지없고 힘도 빠지게 마련이다. 그런 현상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판의 최대의 결전을 앞에 놓고 여당이 무너진 사실을 국민은 달갑게 여지기 않는다. 상당수의 국회의원들이 탈당함으로써 이제는 제2당의 자리를 감수해야 하는 열린우리당의 그 내분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 여당이 저렇게 꼴사납게 된 최대의 원인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열린우리당이 운동권 출신들이 만든 혁신적 정당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그 당은 창당할 때부터 애매모호한 집단으로 그 정체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일에 앞장서서 가장 큰 수고를 한 사람들은 김대중 씨를 비롯하여 새천년민주당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민주당은 오그라들고 엉뚱하게 우리당이라는 생소한 정당이 등장하여 여당으로서의 자리를 굳혔고 이들이 이른바 참여정부라는 매우 이해하기 힘든 정부를 출범시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대통령을 당선시킬 만큼 막강한 민주당을 업어치고 정치적 ‘애송이들’이 주축을 이룬 새 정당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경위를 아직도 잘 모른다. 그래서 참여정부의 이념, 방향을 짐작조차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여당 붕괴의 책임이 대통령에게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책임은 여당을 이끌었으나, 이념이 매우 불투명한 인사들에게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 인물 중에는 사상적 배경이 애매한 것뿐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심한 자들이 여럿 끼어 있었던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햇볕’이니 ‘포용’이니 하는 대북정책 그 자체가 잘못이기보다는 이를 위해 일선에 배치된 사람들의 동기가 매우 불순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일부는 대한민국의 헌법을 끝까지 지킬 의욕도 없어 보였다. 때문에 헌법을 사수해야 할 대통령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엉뚱한 생각, 엉뚱한 몸짓으로 그를 흔들어 대한민국을 어지럽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어떤 면에서 거침없이 나가는 대단한 사나이다. 본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잃을 것도 없다. 그는 오늘도 그렇다. “하고 싶은 말은 한다”는 그의 일관된 철학은 좌충우돌하는 모습만 보였지만, 그가 던진 말에는 귀담아 들을 만한 내용이 적지 않았다. 이것은 그를 둘러싼 인간들이 하나같이 이기주의자들이었기 때문에 빚어진 비극이다. 저만 잘 살면 되고, 저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처세술에 젖은 사람들이었다. 그가 고건뿐 아니라 김근태, 정동영 등을 싸잡아 후려치면서 “당신네는 믿을 만한 인간이 못돼”라고 했을 때 상식 밖의 발언처럼 들리기는 했지만 말은 맞는 말이었다. 노무현 씨가 링컨을 좋아한다기에 왜 당신은 링컨처럼 정직하지 못한가, 왜 당신은 링컨처럼 관대하지 못한가 하며 나도 그를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 우글거리는 비열한 인간들을 보면서 그에 대해 동정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런 인간들, 자기 자신의 ‘주제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한심한 인간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변했다. 노씨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그 당의 선거대책본부장은 그가 당선이 되고 얼마 뒤에 감옥에 끌려갔으니-노무현은 차마 그럴 수 없었을 텐데, 그는 순진했기 때문에 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판국에 호남의 터줏대감 김대중 씨는 조금이라도 가책을 느끼고 있는가. 운동권인 김근태, 정동영은 반성하는가.

16대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기 전에라도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가 거꾸러지기를 바라고 있다면 그들은 사람도 아니다. 그들이 “노 대통령은 정치에서 손 떼라”고 하였는데, 그걸 말이라고 하였는가. 대통령이 정치에서 손을 떼면 청와대에서 밥만 먹고 누워 낮잠이나 자라는 말인가. 철이 없어도 너무 없다. 지도자가 되기는커녕 제대로 사람노릇 하기도 어려운 인간들이다. “이게 뭡니까.” 예전에 내가 자주 쓰던 이 한마디가 저절로 튀어나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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