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인 아들이 공부에는 별 흥미가 없고 컴퓨터 게임과 운동에만 빠져 있다고 한탄하는 한 주부를 보고 고등학생을 둔 다른 주부가 걱정할 것 없다고 위로한다. 이유인즉 자신의 아이도 마찬가지였지만 고등학생이 되더니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이 없고 운동은 학교 휴식시간에 잠깐 하는 게 고작이니 중학생 때라도 나름대로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해주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고 한다. 고등학교 입학식을 한 다음날부터 매일같이 야간자율학습에 밤 11시가 넘어서야 들어오는 아이가 무슨 컴퓨터를 할 정신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자식을 둔 부모들의 관심은 오로지 공부문제다. 모든 대화는 공부로 시작해서 공부로 끝난다. 이들의 한결같은 희망은 내 아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한발이라도 앞서게 하기 위해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오직 학업에만 열중하도록 요구한다. 책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지 않으면 불안하다. 남의 아이들이 모두 과외를 하는데 내 아이만 집에 있으면 또 불안하다. 아이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가방을 들고 이 학원 저 공부방으로 내몰린다.

어머니들은 사교육 열풍을 원망하면서도 아이들 과외비라도 보탤 요량으로 돈벌이에 나선다.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지출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교육기관에 대한 지출액은 GDP 대비 7.5%로 OECD 회원국 중 2위였고 민간교육기관에 대한 지출 비중은 2.9%로 1위였다. 그야말로 엄청난 교육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이렇게 공부로 내몰리는 아이들은 행복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과외를 하는 아이들이 혹여나 하루 과외를 쉬는 날이면 너무나 기뻐 행복하다고까지 한다는 것이다. “하기 싫은 공부를 하루 쉰다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내몰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 부모들의 항변이다.

유니세프 조사 결과 네덜란드의 어린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미성년 학생들이 이렇게 행복감이 높은 것은 어린이들에 대한 부모 등 사회로부터의 압력이 적을 뿐 아니라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고 관심이 높기 때문이라고 교육학자들은 분석한다. 네덜란드는 일하는 젊은 어머니들의 비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며, 이에 따라 엄마들은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제 우리 부모들은 과연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공부에 대한 강박과 친구관계로 고민은 없는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 볼 때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캠퍼스 참사로 기록된 버지니아공대 사건은 발생 초기의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사건이 발생한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에서는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조승희를 향한 원망이나 분노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비난 대신 조승희의 추모석에 따뜻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남기고 있다. 비록 많은 목숨을 앗아 갔지만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와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 고통스러워 한 그를 이해하고 함께하지 못했음을 오히려 자책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또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을 위해 피땀을 흘리면서 일을 하느라 아이들과 같이 지내주지 못한 부모에게 누가 비난을 퍼부을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면서 부모 역시 큰 피해자라고 감싸 안았다.

이처럼 피해를 입고도 포용하는 성숙한 문화의식을 우리도 과연 가질 수 있을까. 그저 최고, 최대만을 외치며 아이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몰아 앞서지 못하는 아이들은 낙오자로 만들어 잘못된 시각으로 세상을 보도록 만들지나 않았는지, 과연 우리의 아이들은 행복한지 차분하게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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