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서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보궐선거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번 선거 결과를 통해 대선의 향배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국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이번 선거는 마치 대선의 대리전과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 한나라당은 중앙당 차원에서 이재선 후보를 집중 지원하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두 대선 후보들의 대전 방문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지원 유세를 통해 이-박 두 후보간 경쟁과 세 싸움도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고 하니, 이번 선거는 대선의 대리전은 물론 한나라당 경선의 대리전 성격까지도 띠고 있다.

한편 여권과 민주당은 대선에서 충청권과의 공조를 의식해서인지 후보조차 내지 않으면서, 직간접적으로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범여권 충청의원들은 공개적으로 심대평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였다.

혹자들은 이처럼 국회의원 선거가 대선의 대리전으로 변질된 현상을 개탄하고 있다. 지역정치가 실종되었다거나, 혹은 지역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었다는 표현으로 이를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지역정치가 중앙정치의 영향을 받는 것 자체가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지난 2004년 국회의원 선거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의해 엄청난 영향을 받았으며, 작년의 5·31지방선거 또한 노 대통령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 그리고 이처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선거가 더 중요한 선거에 영향을 받는 것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니다. 대부분의 민주국가에서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론적으로 보더라도 지역정치가 중앙정치와 연계되어 서로 일정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지역정치가 중앙정치와 완전히 분리되어 지나치게 독립성을 띤다면, 이는 오히려 국가의 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연 일부에서 우려하는 바와 같이, 중앙정치의 영향력이 너무 과도하여 지역정치의 자율성이 상실될 정도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역의 사정을 잘 모르는 중앙 언론들은 지역정치의 자율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번 서구을 보궐선거만 해도 지역정치의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중앙정치적 요인만 고려한다면, 한나라당과 국민중심당의 경쟁은 해보나마나 뻔한 결과이다. 비록 범여권에서 국민중심당을 지지해 주었다고 하나, 이러한 지원 사격만으로 양자간 박빙의 경쟁을 가져올 수는 없다. 여기에는 분명 지역정치적 요인이 작동하고 있다. ‘대전의 자존심’이라는 슬로건으로 ‘지역색’을 강조하는 심대평 후보가 ‘정권교체’라는 ‘중앙정치적’ 슬로건을 내세운 이재선 후보와 선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역정치는 분명 살아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미국의 한 유명한 정치인은 “모든 정치는 지역적이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물론 미국에 비해 중앙집권적 성격이 강한 우리나라에 이 말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분명 우리 정치에도 지역적 특성은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사회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지역 사회내 가치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존재하는 한, 지역정치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앙정치에 대한 지역정치의 자율성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역정치의 불투명성이다. 이는 지역정치 및 지역선거가 정당이라는 공적 제도를 중심으로 공개적으로 진행되기보다는 지연, 혈연, 학연 등 사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데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지역정치의 활성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지역 단위 정당의 강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역 단위 정당이 강화될 때, 지역정치와 중앙정치는 건설적인 상호 의존관계를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정치의 투명성도 함께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보궐선거가 후보간 개인적 비방에서 벗어나 지역 단위 정당의 발전과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김욱<배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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