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사고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 지난달 14일 유엔개발계획(UNDP)의 친선대사로 임명된 러시아의 테니스 스타 샤라포바는 첫 소감이자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자신이 태어나기 한 해 전인 1986년(4월 26일)의 사건인데다, 6살의 어린 나이 때부터 미국으로 테니스 유학을 떠났던 탓에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참상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체르노빌은 원전사고 이후 미국의 환경단체인 블랙스미스연구소에 의해 선정된 최악의 환경오염지역 10개소 중 하나다. 또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상흔이 남아있는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 2004년 남아시아 일대를 휩쓴 지진해일(쓰나미)현장,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 호시냐 등과 함께 주목받는 재앙 휴가(disaster vacation) 여행지이기도하다.

원전피해·후유증에 인식 격차

원전사고의 심각성을 전세계에 각인시켰으며, 국제원자력 사고·고장등급(INES) 중 가장 높은 7등급으로 분류되고 있는 체르노빌 원전사고. 사고발생 21년째를 맞이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정확한 피해집계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국제기구들의 조사 역시 천차만별이어서 혼란을 부추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센터는 “앞으로 60년 동안 1만 6000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WHO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발표한 4000명의 네 배 규모다. 환경단체들의 피해예측은 이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그린피스는 “10만명의 추가 암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원전관계자들은 “체르노빌사고에 기인한 선천성 기형·비정상적인 임신·기타 방사선에 의한 질병의 현저한 증가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암을 비롯한 불치의 질병들이 발생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와 저항이 가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원자로 정지에 대한 전문가와 일반인들의 간극 또한 크다. 예측가능한 사건이 발생해 원자로가 정지됐고, 공학적으로 더 큰 피해를 막았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은 원자로 정지는 곧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으로 인식한다. 방사선 피폭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이런 위험과 후유증에 대한 인식격차가 해소되지 않다보니 ‘원자력 발전소는 반드시 있어야 할 시설이자 누구나 관심을 갖고 대해야 할 긴급사안’이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은 국민적 동의를 얻기 힘들다. 5일과 6일, 한국원자력 안전기술원에서 진행된 기술정보회의에서도 대국민 불신은 주요 의제였다. 원자력에 대한 오해가 이해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이성보다는 감성이 득세하며, 원전사고에 대한 확대된 위기감 등이 거듭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이런 행사 자체가 오는 6월로 30년의 설계 수명이 끝나는 고리 1호기의 가동연장을 위한 사전포석으로 보고 있다는 보고도 나왔다.

논란빚는 고리원전 연장가동

원자력에 대한 국민들의 현재 감정규칙은 ‘위험’이다. 그러나 전문가 집단의 인식은 ‘절대안전’에 가깝다. 길고 넓은 틈을 메우기 위한 단초는 서로의 다른 인식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어 정확한 지식전달과 신뢰제고를 통해 ‘공유된 위험인식’을 확보해가면서 원자력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한다.

추진주체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정책이 입안되고 시행됨으로써 국가의 기간산업구조가 흔들리고 금쪽 같은 재원과 소중한 시간이 낭비되는 사례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고유가가 지속되고 청정·대체 에너지 개발이 부진해지면서 세계는 체르노빌 이후 버렸던 원전카드를 다시 꺼내들고 있다. 40%의 전력을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경우도 금명간 원자력 발전소의 건립 혹은 연장을 결정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현재로선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단언할 순 없겠지만, 상호신뢰에 입각한 적확한 지식제공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재차 강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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