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 무렵 대학가 주변을 걸어가다 보면 심히 착잡한 심정에 빠지게 된다. 시간이 깊어갈수록 불야성을 이루는 대학가 주점의 간판 네온사인은 실로 환락가를 방불케 한다.

불빛이 서서히 꼬리를 치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울려오는 빠른 템포의 음악소리들, 학생들의 비틀대는 모습과 고성방가가 북새통을 이룬다. 고기 굽는 냄새가 골목골목을 가득히 메우고 웅웅거리는 소음들은 현재 시간을 가늠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그 골목으로는 삼삼오오 어울려 쏟아져 들어가는 학생들, 그들은 밤 새워 퍼마시고 노래할 것이다. 거기에는 젊음으로서의 비판과 토론문화, 논쟁과 현실에 대한 관심이나 낭만은 없다. 그들에게는 시대에 대한 고민이나 주변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 하는 온정도 없다. 그들은 오직 마시고 취하며 현실을 잊어버리려 노력할 뿐이다. 단순함으로 열정을 소비하고 젊음의 낭비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모습은 거의 축제기간을 무색하게 하는데, 이는 매일 밤의 대학가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대학가에서조차도 이미 대학문화라는 말이 사라진 지가 오래 되었다. 어찌 보면 대학입학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생 숫자를 훨씬 넘어선 현실에서 20대는 곧 대학생이라는 등식이 생기고 보면 그럴 만도 하겠다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글로벌 시대의 무한경쟁의 미래 주역이 될 대학생들이 지금 이렇게 시간과 열정을 소비한 채로 휘청거리고 있다는 것은 실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물론 젊음의 열정은 순간의 폭발을 통해서 마시고 노래하는 분위기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대학가 어디에도 대학생들이 그들의 문화를 나누며 함께 할 공간은 없다. 거기에는 소극장 하나가 없다. 전통을 자랑하며 젊은이들이 사상과 철학의 뿌리가 될 수 있는 서점 하나도 보이지를 않는다.

돌아보면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소위 대학문화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대중문화의 대타적인 개념으로서 우리 사회의 젊음을 대변하면서 한 시대를 선도하는 역할까지를 충분하게 수행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중문화가 대학문화의 한 중심으로 자리함으로써 소비문화의 재생산에만 급급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중문화는 소비 지향적이고 감각적이며 외양적인 면에 치중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빠른 변화를 가시적으로 대변한다. 그러나 대학문화라면 가치 지향적이고 창조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정신적인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내면에 대한 관심을 진지하게 모색함으로써 대중문화와는 판이하게 구별되는 성질을 갖게 된다.

우리는 새 학기 초에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전국 여러 대학의 여러 학과에서 신입생 길들이기로 일어났던 불미스러운 일들이 신입생들로 하여금 대학입학의 과정을 회의적으로 만들었던 사건을 알고 있다. 중앙 일간지들이 취재하여 소개함으로써 세간에 널리 알려진 그 일들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도 아니고, 한두 군데에서 벌어진 일도 아니라는 데서 심각한 경종을 울려주었다.

신입생이 초기에 집단의 동류의식을 갖고 하루빨리 친숙해질 목적으로 이루어진 이 의식에는 군대문화가 깊숙이 침투하고 저질스러운 퇴폐문화가 버젓이 뒤섞여 있었다. 그것은 그만큼 대학문화의 정체성이 사라짐으로써 대중문화의 우스꽝스러운 놀이문화가 기형적으로 만개한 결과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大學(대학)문화는 大虐(대학)문화란 말인가? 그 많던 우리의 진정한 대학문화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한남대 문창과 교수·시인>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본문인용 등의 행위를 금합니다.>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