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의 대결에 하도 진저리가 났는지 자신의 정치의식이 중도성향이라고 답하는 국민들이 늘어나면서 정치인들도 너도나도 중도를 외치고 나선다.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서 치열하게 싸우던 진보와 보수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모두가 자신들이 중도세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최적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은 서로가 이념적으로 중도세력이 가장 지지하는 후보는 자신들이라며 보수이미지를 탈색하기에 여념이 없고 열린우리당은 얼치기 좌파라는 집중포화에서 벗어나려는지 당의 진로를 놓고 중도통합 신당을 외치고 있다. 또 대권도전을 포기한 고건 전 총리도 그랬고 민주당도 중도개혁세력의 대통합을 통한 수권정당 창출을 외치니 대선을 앞두고 바야흐로 ‘중도’가 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이러한 중도의 흐름이 우리나라뿐은 아니다. 대통령선거를 한 달 앞두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중도파의 제3후보인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민주동맹 당수가 급속히 부상하고 있다. 자유 민주주의자로 분류되는 바이루는 좌·우파의 대립을 넘어 ‘하나의 프랑스’를 창조하는 제3의 길을 가겠다고 공약하고, 프랑스인들이 단결하지 않으면 나라는 폭발하고 말 것이라며 자신만이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강조, 유권자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중국도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 건설을 기치로 제3의 길을 가고 있다. 사회주의 수호를 주장하는 좌파나 민주화를 외치는 우파도 아닌 중도를 선택하고 있다. 중국의 학자들은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한 현재 지도부의 구호인 ‘균형성장’과 ‘조화사회’는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며, 시장경제와 공산주의를 한데 버무리고 있는 형국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현재 우리 정치권에서 대두되고 있는 중도가 좌우의 극한 대립에서 벗어나 양자를 다 아우르는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너도나도 중도를 표방하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제시하는 정파가 없다.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가지고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이지도 보여주지 못하고 열심히 구호만 외치고 있다. 그들이 외치는 중도가 완전한 진보나 보수와 색채를 달리해 자리를 잡는다면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니라 선거가 다가오니 좌우의 싸움에 진저리 난 국민들의 표만을 바라보는 어정쩡한 중도는 정체성이 없는 회색정당이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정치권이 이처럼 중도성향으로 쏠리게 됨으로써 정당 혹은 후보들 간의 정책 혹은 공약의 차별성이 없어져 유권자들이 정책보다 또다시 지역색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지 않을까 우려를 하고 있다. 현재 각 정당의 구조는 진보와 보수, 개혁세력이 뒤섞인 상태다.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과 정체성보다 영호남이라는 지역색과 민심의 흐름에 따라 당선이 유리한 정당으로 애당초 자리를 잡았을 뿐 아니라 세불리기와 거듭된 이합집산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정당구조이다 보니 여당은 이미 사분오열됐고 한나라당도 대세가 불리하면 언제든지 뿔뿔이 흩어지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확실한 자기 정체성이 없이 민심의 흐름에 따라 일시적으로 중도를 외친다면 앞길이 뻔하다

따라서 각 정치권은 유권자들이 표심이 중도로 흐를 것 같으니 너도나도 한 표를 더 얻으려 급조한 중도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은 수구의 이미지로 낙인이 찍혀온 대표적 정책인 대북문제를 비롯해 각종 현안에 대해 그동안의 강경한 목소리를 접고 어디까지 변화를 주겠다는 것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 또 열린우리당은 지금까지 노무현 정부가 펼쳐온 각종 진보적 개혁정책이 민심을 얻지 못했으니 한발 물러나는 것이 중도라고 생각한다면 명확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먼 장래를 내다볼 때 국가도 자신들의 정당도 살아남는 길이다.<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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