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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007-03-14기사 편집 2007-03-13 17: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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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전쟁이 터진 1904년 세계의 이목은 한반도로 쏠렸다. 희한하게도 러시아와 일본은 자국이 아닌 대한제국과 청나라를 무대로 남의 땅 뺏기 싸움을 벌였다. 대한제국은 앞마당을 전장으로 내주고도 국외중립을 선언해 웃음거리가 됐다. 위정자들은 국제정세에 어두웠고, 무기력했다. 1년 뒤 을사보호조약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그 다음의 합병은 더 이상 뉴스가 되지 못했다.

폴란드는 18세기 후반에 더한 아픔을 겪었다. 귀족 공화국 체제가 파탄을 맞으면서 국경을 맞댄 러시아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의 사냥감으로 전락했다. 세 나라는 분할통치라는 이름으로 폴란드를 야금야금 먹어치웠다. 1795년 3차 분할이 이루어졌고,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법을 찾지 못한 이 약소국은 123년 동안 유럽 지도에서 사라졌다. 효과적인 동맹체제를 구축하지 못해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대한제국과 폴란드의 역사가 던지는 교훈은 무엇일까. 그것은 열강의 각축 속에서 한 국가가 지켜내야 할 살아남기 전략이다. 러일 전쟁 직후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무장관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고 한다. “우리는 한국인들을 위해 일본에 간섭할 수 없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을 위해 주먹 한 번 휘두르지 못했다.” 러시아 견제를 위해 내심 일본을 지원한 미국의 정치적인 수사는 당시의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을 생생히 보여준다.

자주라는 화두가 참여정부 외교 안보의 지고지선이 된 이즈음 북핵 6자회담 당사국들이 보여주는 행보는 어지럽다. 특히 미국과 북한의 움직임은 현기증을 안겨준다. 뉴욕에서 회담을 마친 뒤에는 부시 대통령 임기내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다. 과장하자면 혼담 수준의 밀월이다. 삿대질하며 드잡던 때와는 격세지감이다. 이 정도는 경천동지의 예고편에 불과할지 모른다. 사실 국익 앞에서 친구와 적이라는 구분은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무분별한 짓이다.

북핵을 둘러싼 다른 당사국들의 움직임은 더욱 부산해질 것이다. 그러나 6자 회담의 당당한 한 축이 되어야 할 우리는 소외된 느낌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한 과정이 되리라는 기대감도 어쩐지 공허하다. 핵심 당사자는 배제시킨 채 제멋대로 남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려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한미연합사를 해체키로 하는 등 공짜 밥상을 걷어찬 입장이긴 하다. 자주노선으로 안보를 튼실히 하겠다는 다짐이지만 의도대로 되리라고 누가 보장하는가.

구소련의 품안에 있던 몽골은 지금 미국의 등에 올라타 있다. 1995년 국방장관이 미국을 첫 방문했고, 부시도 몽골을 찾아가 화답하면서 양국은 군사동맹 수준의 관계가 됐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은 안절부절이다. 이 틈을 비집고 일본은 차관을 미끼로 구애의 손길을 노골화하고 있다. 탈냉전 시대를 맞아 몽골 나름의 생존 전략을 추구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자존심 따위는 팽개치고 국익 최우선 원칙 아래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함으로써 일궈낸 일이다.

우리처럼 나라를 잃었던 폴란드는 1999년 나토에 가입하고 2004년 EU 일원이 된 뒤 미국 중심의 나토와 EU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러시아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때 미국을 선택했으나 경제 재건 차원에서 친EU로 U턴 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독자적으로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생존하기 힘들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국익과 실리라는 나침반을 들고 외교 안보의 해법을 찾지 않으면 활로는 없다. 분단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주변국들의 움직임은 긴박하건만 우리는 태평가에 바쁘다. 한쪽은 자주를 앞세운 교조적 반미에 취해 있고, 다른 한쪽은 대권을 잡은 양 김칫국 타령이다. 조선 망국의 뿌리는 거슬러 올라가면 구한말의 시대착오적 척사론이다. 또 하나 나라를 이끌 힘도, 의지도 없었던 지도층의 책임이다. 오늘날 국제 정세와 한반도 현실은 구한말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역사 앞에 겸허하지 못하면 그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역사의 준엄함이 한없이 두려워지는 요즈음이다.

송신용<정치행정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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