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어느 정부보다 끊임없이 논쟁거리를 생산해 내는 것이 참여 정부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동안 잠재해 있던 모든 문제거리를 하나하나 꺼내 공론화하고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게 하는 즉, 완전한 민주주의의 진행 과정으로 이해를 한다고 해도 하루도 바람잘 날이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동안 잠잠했던 이념논쟁이 설연휴동안 또 불거졌다. 진보와 보수 논쟁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의 `유연한 진보`론 제기를 계기로 진보 대 진보가 맞붙었다. 서구에서는 이미 용도가 폐기된지 오래라는 이념 논쟁이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로 각 정당이 정치적 이념을 정립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민들의 삶의 질과는 전혀 관계없는 논쟁이 수두룩하다.

특히 진보와 보수의 이념 논쟁은 남북한 대치라는 특수한 상황이 존속되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남북간의 냉전이 지속되면서 우리사회에서의 이념이라는 것은 곧 북한에 대한 인식이 어떤가 하는 것과 직결됐다. 해방 이후 80년대까지 진보는 곧 북한을 이롭게 하는 친북좌파로 몰려 수난을 겪었고 보수만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있다는 정당성을 부여 받았다.

이는 원래의 진보와 보수의 정의와는 동떨어져 크게 변질된 것이다. 경제와 사회정책에서 진보와 보수에 대한 학자들의 정의는 `정부개입과 시장경제`, `복지와 성장`, ` 평등과 자유`라는 가치들을 놓고 국민들을 위해 어디에 더 초점을 맞출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10여 년 전에 이념논란이 용도폐기된 영국의 경우를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1997년 총선에서 영국의 좌파인 노동당은 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우파적 정책을 들고 나와 보수당을 이기고 집권한 것이다.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국유화를 명시한 노동당헌 4조를 수정한 후 개혁을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이후 영국정치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됐다. 야당인 보수당은 집권 노동당이 과거 자신들이 추진하던 정책을 거의 다 써먹고 있어 차별화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해 고민에 빠져있다. 즉 결국 어느 정파가 국민 삶의 질을 더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한 정책의 유무에 따라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지 이념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정치권에서 나타나는 진보와 보수의 논란도 궁극적인 종착점은 모두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정작 아무에게도 득이 될 것이 없는 소모적 논쟁일 뿐만 아니라 다음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정쟁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설연휴 기간 정치권 인사들은 저마다 지역구를 돌아다니며 밑바닥 민심을 들어 본 모양이다. 한결같이 살기가 힘들며 국가지도자들을 향한 원망을 넘어 체념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한두 해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명절이 됐으니 인사치레하러 찾아와서 몇마디 듣고 가는 것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유연한 진보`논쟁에 설 연휴기간 제기될 법했던 서민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얘기는 한쪽 구석으로 내몰려 화젯거리에도 들지 못했다.

노대통령의 발언 이후 진보진영에서는 참여정부의 정책 실패를 탓하며 확실하게 진보-보수를 구분하지 않는 `잡탕`으로는 다가오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며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합일점을 찾지 못할 또 하나의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듯 참여정부 4년간은 무수히 많은 논쟁거리를 쏟아냈지만 말끔히 정리된 것은 없고 반목과 대립만을 키워왔다. 이제 대선이 다가올수록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대립은 또 다시 시작될게 뻔하다. 참여정부 5년 내내 논쟁만 벌이는 꼴이니 갑갑할 뿐이다.<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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