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했던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있어 졸업식은 가혹한 행사다. 불참하자니 꺼림칙하고, 가자니 주눅이 들 것 같다. 불편하기는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자식놈 기죽을까봐 `後生可畏`다, 한번 실패는 병가상사라는 말을 되뇌지만 속내는 타들어간다. 그래도 졸업식에는 참석해야 한다고 어르고 달래서 식장에 와보니 자기자식만 못나고 불쌍해보인다.

무리하면서도 서울권 대학진학

다소 위로가 됐던 것은 행복하기만 할 것같은 `서울로 대학을 보낸 부모들`도 나름대로 걱정거리를 안고 있다는 점이었다."둘이 써도 40만원대에 달하는 하숙집은 퀴퀴한 냄새가 절어 있는 듯하고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그나마 그런 너절한 방도 불과 몇 시간만에 계약이 되더라고. 그냥 대전에 있는 대학에 갈 걸 괜히 서울로 왔다는 아이의 말에 무리를 할 수밖에. 1000만원이 넘는 보증금에 매달 40만-50만원의 방값, 용돈에 밥 사먹고 하면 도대체 아이 앞으로 얼마를 보내줘야 할지 보통 걱정이 아니야 . 외국으로 유학 보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들 살지."

이런 걱정을 하면서도 지방의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서울의 명문대학에 진학시키려 한다. 지방소재 대학보다 더 좋은 직장과 기회, 그리고 인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사람과 자금· 기회가 여전히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만큼 서울의 유명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한 첫걸음 정도로 인식한다. 서울 명문대 선호와 지방대 차별이 표면상으로는 줄어들고 있다지만 지방 사람들이 체감하기에는 아직 먼 얘기다. 지방대 출신 10명 중 7명은 구직 활동시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사원을 채용할 때 지방대생을 차별한 적이 있다는 인사담당자도 10명 중 4명꼴로 조사된 바 있다. 서울소재대학 출신과 지방대 출신사원의 업무수행 능력에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 기업과 인사담당자들의 편견으로 취업에 있어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그릇된 연결고리를 끊어야 하겠지만 실행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기득권자들의 조직적인 저항도 있겠으나 지방대의 자구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지역구성원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전제되지 않는 한 지방대의 약진과 위상제고는 달성키 어려운 목표다. 지방대의 위상제고는 실력쌓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데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9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Becker)교수가 주장했듯 어떤 특정한 분야나 산업에 종사하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인적자본을 형성하는 일을 지역대학이 해내야 한다. 지역의 대학들이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혁명에 가까운 개혁이 요구된다. 싱가포르의 대학들이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과 동일한 성취도 평가시스템을 운영해 자국의 졸업생들을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자들과 동등한 실력을 갖춘 인재로 자리매김시켰던 사례는 벤치마킹해 봄직하다.

어디서나 인정받는 지방대생으로

세계수준의 연구를 수행하고 다음세대의 지도자들을 양성하려면 세계적인 연구역량의 교수들을 확보하고, 우수학생을 위한 뛰어난 교육프로그램과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재정적 투자도 중요하지만 변화하려는 구성원 모두의 의지와 강력한 리더십, 그리고 조직적인 추진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물론 최우선 순위는 경쟁력있는 인재양성이다. 성과주의적 평가와 보상제를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된다. 교수들간의 경쟁시스템 강화는 변화의 핵심축이 되어야 한다.

"여기 있는 졸업생들은 이미 성취했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할 자격이 있다"는 서남표 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의 졸업사와 같이 긍지와 자부심을 표출할 수 있는 지역의 대학들이 속속 나와줘야 한다. 입학하는 자원이 약하다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의 학생들이 지역 대학에 진학해도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수 있고, 수준 높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지역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지역대들의 뼈를 깎는 자성과 혁신을 주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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