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사는 아파트단지는 대전 둔산 신도시에 있지만 집값이나 위치로 볼 때 그리 주목받는 곳은 아니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단지 누구네 집 아이는 중국으로, 다른 아이는 뉴질랜드로 유학 갔다는 식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유학 간 아이들은 대학생·고등학생도 아니고 초·중학생들이다. 유명 아파트단지가 아닌 곳에서도 조기유학생들이 속속 나가고 있으니 조기유학이 정말 일반화됐다는 생각이 든다.

2005년부터 연간 2만 명을 넘어선 조기유학생 수는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 미국·영국·캐나다·중국·필리핀·싱가포르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몽골 등지로 가는 조기유학생도 흔해졌다고 한다. 요즘에는 머나먼 곳으로만 느껴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태평양의 조그만 섬나라 피지 등지로도 간다고 한다. 한국의 조기유학생들이 전 세계로 퍼질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그런데 법적으로 따지면 부모의 해외이주 때문에 혹은 특수한 재능이 있어서 교육당국의 정식승인을 받지 않으면 초·중학생의 자비유학은 안 되게 돼 있다고 한다. 법 규정은 부모들의 교육열 때문에 진즉에 사문화(死文化)된 셈이다.

중산층까지 침투한 조기유학

이 때문에 교육·여행서비스수지 적자는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연간 27~28%가량 증가하는 교육·여행으로 인한 적자는 지난해 11월 14억3000만 달러를 기록할 정도로 매달 10억 달러이상 유지하고 있다. 연간 100억 달러이상, 10조원이상 손해인 셈이다. 사상최초로 100억 달러 수출액을 달성했다고 온 나라가 들썩였던 게 엊그제인 것 같은데 아이들 공부시키고 외국바람 쐰다며 같은 액수의 돈을 외국에 뿌리고 있는 것이다.

주한 외국경제인들은 좀 다른 생각을 내놓는다. 글렌 휘스트 주한 호주·뉴질랜드 상공회의소 회장은 “해외여행과 유학이 느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고 이를 통해 국민들의 국제경험이 쌓이면 결국 국가발전으로 이어진다”며 “일류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거치는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도 서비스수지 적자가 구조화되지 않고 1~2년에 그치거나 적자액이 소규모라면 오히려 한국경제에는 득이 된다고 한다. 적정수준의 적자는 무역마찰 해소, 환율관리, 물가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휘스트 회장 말대로 조기유학생들이 나중에 국가발전에 기여하게 된다면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볼 때 서비스수지 적자누적은 일시적인 적자가 아니라 구조화될 위험이 더 높아 보인다. 원인이 한국사회, 한국교육에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경제규모가 커지자마자 충격적인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가 반강제적으로 세계화의 물결에 편입됐다면, 과연 교육 분야에서도 세계화에 대한 논의와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 뒤따랐는지는 의문이다.

입시부담 외면한 교육이 초래

대학입시에서 내신·수능·논술고사를 모두 준비해야 하는 고등학생들은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며 절망하고 있다. 학생들이나 학부모 모두 어느 것 하나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3년간의 준비 끝에 세 가지 중 한 가지만이라도 실패하면 대학입시에서 실패하게 되고, 대학입시 실패는 사실상 인생의 실패로 귀결된다는 뿌리 깊고 폭넓은 인식 때문이다. 조기유학은 그래서 이 같이 어렵고 위험한 국내 대학입시를 우회하는 대안코스로 선택되는 것이다.

내신·수능·논술고사는 자기들만의 제도를 강요하던 교육당국과 교원단체, 대학 간 갈등 끝에 타협의 산물로 탄생한 혐의가 크다. 세계화시대에 맞는 교육 여부에 대한 고민은 고사하고 입시를 치러야 하는 학생을 배려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과중한 입시부담이 성장기 고교생들에게 너무 가혹한 건 아닌가라고 생각이나 해봤는지 의문이다. 한술 더 떠 최근에는 필수과목 수를 늘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사교육의 개입을 배제하려 했지만 오히려 더욱 활성화된 느낌이다. 지금이라도 학생들의 부담을 더는 입시, 교육체계를 세계화시대에 맞는 틀로 바꾼다면 조기유학, 교육이민은 물론 서비스수지 적자도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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