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근대 문화유산 - ② 사라지는 문화재

대전의 대표적인 근대건축물 중 하나인 한빛은행 옛건물은 당국의 무관심 속에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대전일보 자료사진>
대전의 대표적인 근대건축물 중 하나인 한빛은행 옛건물은 당국의 무관심 속에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대전일보 자료사진>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지난 2000년 12월 11일 일어난 대전근대건축물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을 쉽게 잊지 못한다. 대전시가 지하철 공사를 벌이면서 대전의 대표적 근대건축물이자 문화재 예비목록에 올라 있는 중구 대흥동 한빛은행 대전중앙지점(옛 한국은행 대전지점)을 철거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지난 1948년 설계에 들어가 한국전쟁 이전에 착공해 전쟁이후 1953년 완공한 네오 바로크풍의 양식에다 일본풍 건물 양식이 절충된 대전에 몇 안되는 멋진 근대건축물이었다.

근대건축물 전문가인 목원대 김정동교수는 당시 한빛은행 건물 철거에 대해 “근대건축물 중 은행건물은 전국에 몇개 남지 않았는데 결국 우리가 지키지 못해 사라지게 됐다”며 탄식했다.

김교수가 최근 펴낸 ‘남아있는 역사 사라지는 건축물’에 따르면 대전의 근대건축물 역사는 어언 100년이며 이 가운데 대전을 대표할 만한 건축물은 166개 가량 된다. 현존하는 대전의 근대건축물은 옛 동양척식(주)대전지점(1912년),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성당(1921년), 뽀족집(1929년), 충남도청(1932년), 대전공회장(1936년), 목동성당(1919년) 등 모두 40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부분 근대건축물들이 1970-1980년대 개발 논리에 밀려 자취를 감췄고 그나마 남아있는 건물들도 원형이 많이 변형됐다. 동구 인동의 동양척식 대전지점은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내부와 외관이 바뀌었다. 옛날 대전역사와 중부경찰서, 일본헌병대 대전분소, 대전형무소, 충남여고, 원동초등학교, 조선운송대전지점, 연극장, 옛대전일보사 등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근대건축물은 아니지만 교육·종교·업무·집회·의료·산업·주거·숙박시설 등 보존해야 할 건축물들도 많다. 심지어 정동가도교나 효동가도교, 대전천교, 회덕터널, 오정동우물, 유성온천 유래지, 골령골 학살지 등도 문화재의 범주에 넣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넓은 의미로 보면 아직도 많은 근대건축물들이 남아 있는 셈이다.

문제는 각종 개발이 진행되면서 이들 건축물에 대한 보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 근대문화유산의 경우 해당 지역 주민들이 꾸준히 철거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동구 원동 산업은행 대전지점의 경우 최근 중앙시장 상인들이 시장재개발을 위해 건물을 철거하자는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 1958년 준공된 선화동 영열탑은 최근 주택공사에서 재개발 계획을 수립해 존치 여부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경부고속철도 대전도심통과 구간 공사가 이뤄지면 십수개의 굴다리와 가도교가 사라지게 된다.

대전은 현재 원도심을 중심으로 수십여곳에서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어 종합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원형 그대로 보존할 수 있으며 가장 좋지만 어렵다면 이전 복원을 계획해야 한다. 이마저도 어렵다면 최소한 문화재에 대한 기록을 철저히 남겨야 한다.

목원대 김정동교수는 “충남도청사는 대전의 랜드마크나 다름없기 때문에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요즘은 교량, 굴다리, 굴뚝, 등대 등 산업유산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이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殷鉉卓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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