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돼지해에 거는 서민들의 기대는 크지 않았다. 그저 일자리를 부지하고 가족들이 건강하면 족했다. 조금 욕심을 부렸다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이 민생에 전념해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소박한 바람은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발표로 물 건너 가버렸다.

4년 연임제 개헌이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공약이기는 했다. “임기 마지막해인 2007년에는 그동안의 정치개혁의 성과를 토대로 대통령 중임제,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의 뜻을 물어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발언을 했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적극적으로 개헌을 주도할 수는 없다. 개헌에 정책 우선성을 두지도 않고, 되지도 않을 일을 갖고 평지풍파를 일으킬 수 없다”고 말했다. 개헌보도로 이어질 것을 염려한 청와대측은 "대통령의 발언을 개헌으로 연결시켜 보도하는 언론과는 법적인 대응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랬던 대통령이 “더 이상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개헌일정을 발표한 것이다.

순수성 의심받는 개헌제의

지지도가 바닥에 도달했고 심각한 레임덕 현상에 직면해 있는 대통령이 하필이면 대선을 앞에 둔 이때, 개헌카드를 꺼냈는가에 대해 논란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또다른 갈등과 혼란이 촉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쏠림과 편가르기 현상이 재연될 개연성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책임 있게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이 개헌을 지지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고 말해 자연스럽게 편가르기를 유도하고 있다. 반대의견은 발을 부치지 못하게 하는 쏠림현상은 생산적인 논의전개를 불가능하게 한다. ‘21세기 새로운 한국을 위해’ 꺼낸 개헌이라지만 다분히 현재의 대선판을 흔들기 위한 수가 읽힌다. 개헌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야당과 사회 각 계층의 분열과 소모적 다툼역시 심화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개헌가능성 여부를 떠나 발표만으로도 대선판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터뜨리는 방식, 다시말해 충격을 주는 방법으로 개헌카드가 사용된 것도 유감스럽다.

한마디로 개헌의 논의시기와 방법에 있어 바람직하지 못했다. 또 그동안 대통령의 발언이 오해와 갈등을 양산해왔던 과거의 전력으로 이번 개헌발표가 구국을 위한 결단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신뢰도가 하락한 현실적 상황은 대통령의 결단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게 하는 또하나의 요인이다.

제도 자체도 그렇다. 대통령 4년 연임제는 이상적인 체제라고는 하지만 최선의 제도는 아니다. 잇따라 재선이 되지 않을 경우 지금보다 더 큰 국정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국정수행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우리의 경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재선을 겨냥한 인기영합주의 정책의 난립, 과도한 경기부양, 특정정당의 독주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개헌논의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진행해야 한다. 폭넓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헌법을 개정하려고 한다면 거센 반발과 후유증이 따른다.

냉철한 이성이 필요한 시점

일각에서는 이번 개헌발언을 대선전략의 일환으로 단정짓고 있다. 다음 단계는 임기단축과 퇴진,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 및 단계별 통일로드맵 선언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이래저래 이번 대통령의 개헌논의가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현 국정의 표류와 갈등이 제도의 미비라기보다는 지도자의 영도력 부족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용기있는 지도자라면 비록 자신의 태도에는 큰 잘못이 없다고 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마땅히 고려했어야 했다는 첨언을 붙여본다.

대통령의 개헌선언이 있던 날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가 큰 폭으로 줄고 있으며, 정년퇴직은 이미 보통사람들에게 있어 ‘꿈’이 돼버렸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절망했다. 개헌논의가 또다른 상실과 무기력증을 유발시키는 기제가 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국민들의 냉철한 이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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