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나고 성적표가 수험생에게 전달됐다. 이제 곧 대학마다 정시모집이 시작된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입시철을 맞은 셈이다. 매년 이맘때면 고3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이 수능점수로 인해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수능점수 몇 점 차로 인생의 승패가 좌우되는 것도 아닌데 마치 자기 인생이 결딴이나 난 것처럼 안절부절 못한다.

왜들 이렇게 수능점수에 목을 매는가? 그야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이다. 왜 좋은 대학인가?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곳에 취직하기 위해서라면 할 말이 없지만 본질적으로는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좋은 교육이 무엇이겠는가?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단편소설 ‘두 도시의 이야기’ 속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죄수가 오랫동안 감옥에서 복역을 하게 된다. 그는 긴 세월의 감옥생활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옥생활에 익숙해진다. 자신이 거처하는 좁은 공간이 불편하기보다 오히려 안락함을 느낀다.

세상에 걱정거리가 없어 좋다. 돈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서 좋고, 자식 걱정할 필요도 없고 아내 잔소리 들을 필요도 없어 좋다. 말과 행동에 신경 쓰지 않아서 좋고 남의 눈치 보거나 체면 차리지 않아서 좋다. 거처가 좀 누추하기는 하지만 주는 밥 먹고, 낮에는 시키는 일 하고 밤에는 자고 싶은 대로 자면 그만이다. 그는 이 감옥에서 별다른 불편함 없이 오히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와 같은 오랜 감옥생활 끝에 드디어 그는 복역기간이 다 되어 석방된다. 석방되는 날 그는 자기 아버지 집으로 돌아간다. 아버지 집에서의 첫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거렸다. 이유는 자기 방의 공간이 너무 넓었기 때문이다. 휑하니 터진 넓은 방의 공간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고급 침대도 부드러운 이불도 그에게는 도무지 편하지가 않았다.

며칠 동안 잠을 설치다가 마침내 그는 넓은 자기 방 한 모퉁이에 벽돌을 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자기가 지내왔던 감방만한 크기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그 좁은 공간에서 마음의 평안을 되찾고 안락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흔히 인간을 습관의 노예라고 한다. 이는 인간이 길들여지는 존임을 말한다. 편안함도 불편함도, 행복도 불행도, 진실도 거짓도 길들여지기 나름이다.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가? 교사와 학생이 교실에서 지식을 가르치고 배우지만 지식이 교육의 본질적인 대상은 아니다. 교육이란 가르치고 배우는 자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을 배우는데 있다. 교육의 주체도 교육의 대상도 사람이다. 사람을 가르치고 배우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습관, 좋은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이다. 즉 교육이란 학생들을 올바른 습관, 좋은 습관을 갖도록 길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가정교육이 잘못되고 청소년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이 말은 가정에서 어린 아이들이 잘못 길들여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학교에서 학생들이 잘못 길들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마치 좁은 감방에서 오랫동안 길들여진 죄수가 그곳 생활이 익숙하고 편한 것과 같이, 잘못된 습관을 가진 아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 길들여진 채 사회로 진출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모든 사회문제의 화근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의 본질을 우리가 제대로 인식한다면 학생도 학부모도 굳이 수능점수에 목매어 일류대학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지 않는가? 우리의 교육현장에 이러한 교육 본래의 목적이 구현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고만 할 것인가? 남청<배재대 심리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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