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홍사중 선생은 리더의 책무를 아프리카 부족의 사례에서 설명했다. 한 5백 년 전 쯤, 남미 인디오 추장이 프랑스를 방문했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가 그에게 ‘당신의 특권은 뭐냐’고 묻는다. 그러자 “싸울 때 맨 앞에서 서는 것”이라고 답했다.

잠비아 누덴브 족 수장의 즉위 의식은 누더기 차림의 그와 아내를 참석시킨 ‘선출된 수장에게 욕하는 행사’다. 의식은 사제의 설교로 시작된다. ‘당신은 이기적이고, 어리석다. 부족을 사랑하지 않고 화를 낸다. 탐욕이 전부다. 이제는 자기본위로 살지 말라.’

의식은 계속된다. 꿇어앉은 수장 내외에게 과거에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서운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차례로 나와 욕설을 퍼붓는다. 또 미주알고주알 온갖 원망을 쏟아낸다. 그렇다고 수장에게 소명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 노 대통령 지지도, 역대 최저치.

그런 뒤 사제는 구성원들에게도 당부한다. “좋으나 싫으나, 새 리더가 뽑혔다. 설령 인품이 부족하고, 속이 좁다 해도 뒤에서 험담하지 말라. 우리의 리더인 이상 불신하지 말라. 그를 보호하고, 결정을 믿고 따라야한다”고 말한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한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5% 대다. 100명 중 고작 대, 여섯 명이 지지한다는 얘기다. 임기 말 외환 위기로 최악이던 김영삼 (YS)전 대통령의 조사치 8.7%나, 대북 퍼주기 논란· 친인척들의 각종 의혹연루도 바닥이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15%대에 비해서도 최저치다.

지지층 몰락은 특정 계층, 지역, 세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놀라운 일은 지난 2002년 대선 때 적극 지지했던 층의 이탈이 심하고, 일부는 반노무현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를 지지했던 층이 앞장서 흔들어 대는 셈이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다. 물론 개개인 시각과 정치적 입장, 상황인식이 달라 꼭 집어 단정 짓기는 어렵다. 비판가들은 현 정권이 정쟁의 늪에서 사회, 경제, 외교 불안과 국론 분열을 수습하지 못한 채 코드인사와 개혁만을 외치다가 위기를 불렀다는 시각이다. 반대의 사람들은 과거의 오류를 수정하기 위한 노 대통령의 개혁에 대해 보수층 등 안정희구세력들이 반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의 장점을 계승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아도 노대통령을 지지한 세력자체가 반발, 지지층의 몰락으로 이어졌다고 해석한다.

문제는 이것 만일까. 답은 국민들이다. 우리 정치사는 이제 겨우 60년밖에 안 된다. 그 영욕 속에 9명의 대통령이 나왔다. 그중에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비운에 갔고, 나머지들은 ‘실패한 대통령’으로 낙인돼 있다. 존경보다 비난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또 정치 9단인 YS, DJ에서 노 대통령으로 이어진 민선 대통령들이 오히려 군인출신 박정희, 전두환 정권보다 더 못한다는 혹평도 있다. 책임의 상당부분은 그들을 뽑은 국민의 몫이다. 선동정치와 속임수, 여론몰이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이 지경이 됐을까.

-민도 높이는게 올바른 정치.

노 대통령도 그렇다. 언젠가 정치와 선거는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그는 취임 후 4년 줄곧 “대통령직 못해먹겠다”거나 “차라리 식물 대통령이라도 되고 싶다”, “권력을 통째로 내 놓겠다”고 쏟아냈다. 이번 역시 “임기를 다 마치지 않는 첫 번째 대통령이 안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이 민도(民度)가 높다면 가능한 얘기인가 말이다. 상대들이 얼마나 흔들어대면 저럴까 이해도 가지만, 한편으로 애초 자질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저렇게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선장이듯, 대한민국호의 선장은 노 대통령이다. 때문에 노대통령도 민의로 선출된 만큼 끝까지 국정을 책임져야 한다. 이제 못해먹겠다 식의 극단적 발언이나 탓을 상대에게 돌리는 현란한 수사(修辭)는 곤란하다. 난국수습과 표류하는 국정을 정상화시키는 일이 먼저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그를 택했으면 실패하지 않게 밀어줘야 옳다. 흠만 잡아 흔들게 아니다. 대통령이 흔들리면 국정이 표류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대한민국호가 망망대해의 성공을 위해선 선장의 결단이 중요하지만, 함께 배에 오른 모든 이의 슬기와 인내, 땀도 있어야한다.<편집국장.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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