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발생되는 시위의 과격함으로 인하여 시민들은 혼란에 빠지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시위문화’에 젖어 있던 우리에게도 이제 상황은 조금 달라져 보인다. 우리의 헌정사를 살펴볼 때 민주시위가 우리에게 기여한 바는 너무도 크다. 신탁통치를 반대하며 거세게 항거하던 시위부터, 4·19혁명이 있었고 유신체제하에서도 거침없이 민주를 선언했던 수많은 민주시위가 있었다. 마지막 군사정권의 독재체제를 제지하기 위해 끝없는 민주시위가 있었고 그 결과 6·29선언과 민간정부를 표명한 제6공화국이 수립되게 되었다. 물론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3·1독립운동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수많은 민주시위가 있을 때마다 정부는 소위 일부 사회 불순세력(?)의 선동에 의한 소요로 몰아붙이기 일쑤였고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사회 불순인사로 체포되었다. 또 이런 시위가 있을 때마다 정부는 소위 ‘공권력의 개입’을 운운했고 이에 따라 우리의 기억에는 공권력의 개입은 무장경찰의 출동에 의한 시위진압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결국 오랜 세월이 지나 소위 ‘불순세력의 소요’가 ‘민주시위’로 밝혀질 때마다 ‘공권력’이라는 이름도 낯뜨거운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수년 전 잠시 독일에 머물렀던 시절에 독일 TV에서 놀라운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시위를 진압하는데 그 폭력성은 우리의 시위진압을 훨씬 뛰어 넘었다. 거의 죽을 정도로 경찰몽둥이로 패는 모습이었다. 너무 놀라워하던 내 모습과는 달리 옆의 독일 친구는 담담하게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민주국가에서 어떻게 저런 시위진압이 가능하냐?”고 묻자 옆에 있던 독일친구는 “그럼 공권력에 도전하는 것을 방치하느냐?”라고 되물었다. 당시 상황은 시위대가 시위 도중 과격시위로 돌변해 기물을 부수고 경찰에 저항했던 것인데 독일에서는 이 경우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단호히 대처한다는 것이다. 국민에게 친절하기로 유명한 독일 경찰이지만 일단 공권력에 대한 도전에 대처하는 것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단호하다는 것이다.

공권력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법률 몇 군데에는 공권력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헌법소원심판의 청구사유로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행정소송과 행정심판법은 ‘처분’을 설명하면서 그 개념을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그 거부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공권력은 국민의 권리·의무 등에 영향을 주는 입법권·집행권·사법권을 통칭하는 것으로 이 같은 공권력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공헌한다. 물론 그동안 정치현실이 왜곡된 공권력 행사를 반복하여 우리에게는 공권력의 행사는 마치 ‘공공의 적’인 양 저항과 타도의 대상처럼 여겨왔다. 그러나 정상적인 공권력의 행사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수호하는 고결한 사명을 수행하는 것으로 존중과 보호의 대상인 것이다. 그동안의 수많은 민주열사가 민주시위를 통하여 수립하고 싶었던 바로 그것인 것이다. 과거 민주시위를 모두 ‘불순분자에 의한 소요’로 몰아붙였듯이, 시위진압을 모두 ‘폭력적 민주탄압’으로 몰아붙이는 모순을 계속 반복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과거 민주시위 일체가 부정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고결함으로 무장된 민주시위가 부당하게 탄압되고 진압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반민주적이고 불법적인 시위진압에 대해 시위대도 폭력으로 함께 무장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시위가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것임을 부정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민주시위가 합법적인 것으로 허용된 지금 그 범위를 지나쳐 과격시위로 나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과격시위가 그렇지 않은 시위보다 신문에 보다 크게 기사가 나가고 저녁뉴스에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과격화를 통해 민주시위의 본질이 왜곡된다면 그에 대한 단호한 대처 또한 대단히 민주적인 것이고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과거 위헌적 공권력에 맞서 민주를 수호하던 ‘시위’와 합헌적 공권력에 도전하여 민주를 위협하는 ‘시위’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이제 국민들의 눈을 쉽게 속이기에는 국민들의 수준은 너무 높아져 있고 그들의 심판의 칼날 또한 매우 날카롭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김동건<배재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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