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도시건설청은 국립대학으로부터 행정도시 안에 입주할 자격을 박탈시켰다. 전국 4년제 대학에 대학설치사업제안서를 요청하면서 국립대는 제외시킨 것이다. 대학유치위원회서 논의한 결과와 교육부의 의견에 따랐다고 건설청은 밝혔다. 특히 교육부의 의견을 내세웠다. 국립대가 행정도시에 이전할 경우 정부 재정지원이 용이하지 않고, 기존 시설·설비 인프라의 낭비를 초래하며, 입학 정원 감축과 대학 통·폐합 등 구조개혁 정책방향과 상충된다는 것이 교육인적자원부의 의견이다.

교육부 의견에 사립대로 선회

국립대학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지역의 국립대로 압축된다. 이들 대학은 한때는 공동캠퍼스 또는 단독으로 행정도시입주를 나름대로 모색해왔다. 지난 9월 의향서 접수시점까지 국립대 배제방침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또 지난달 4일 충남대·공주대·한밭대·한남대가 ‘공동캠퍼스작전’에 합의할 때 당시 행정도시건설청장이었던 이춘희 현 건교부차관이 동석했다. 이 전략이 바람직한 발상이라고까지 추켜세웠으니 이 차관은 대단한 원군(援軍)이 아니었겠는가.

그런 희망이 느닷없이 국립대학불가란 황당한 절망으로 변했다. 달리기에 제한조건이 없어 열심히 뛰는데 막바지에 국립대란 특정인의 참가자격을 거둬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황이 돌변한 이유도 자체(대학유치위원회) 논의보다는 관계기관(교육부) 의견에 비중을 뒀다. 자기집 일을 옆집의 훈수로 처리하는 꼴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격을 박탈당한 특정인이 어찌 반발하지 않겠는가. 행정도시건설청은 스스로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성을 추락시킨 장본인이나 다름없다.

행정도시건설의 취지는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이며 행정도시에 자족적인 기능을 부여하기위해 대학이 설치된다. 그런데 대학 후보에서 국립대학을 빼면 결국 수도권 사립대가 남는다. 제안서 제출시일도, 선정일정도 번개불에 콩튀기듯 짧다. 마치 입찰(入札)을 보는 듯하다. 이렇게 선택된 수도권 사립대는 행정도시에 분교를 설치할테고 이는 수도권 사립대가 지방으로까지 세를 확장하는 결과를 낳는다.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이란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이란 참여정부의 구동력이 떨어져서인가 행정도시내 대학설치는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행정도시에는 핵심중추기관외에 거의 모든 국가기관이 들어선다. 대학도 같은 선상이다. 행정도시라고는 하지만 장차 수도와 버금가는 역할이 기대되는 곳이 행정도시다. 행정도시에 한 국가를 대표하는 국립대학이 없다는 점은 말이 안된다. 당연히 행정도시에 국립대학을 설치하고 다른 기관과 마찬가지로 국가역량을 모아 집중 육성해야한다. 돈이 없다면 다른 사업비를 여퉈서라도 행정도시안에 국립대학을 유치에 앞장서는 것이 교육부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교육부가 재원조달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아예 행정도시내 국립대학의 싹을 잘라 버린 격이다. 지금이라도 국립대불가방침을 철회해야한다. 오히려 사립대불가라고 해야 옳다.

자원낭비등 이유 설득력 없다

또 교육부는 기존 시설·설비등의 인프라 낭비를 들었다. 하지만 ‘낭비’보다는 한걸음 나가 ‘활용’이란 발상을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그러한 시설과 설비를 원하는 기관·단체는 얼마든지 많다. 한 예로 대덕특구에 무수히 포진한 연구기관들은 시설이 없어 아우성이다. 이를 해결하기위해 자연녹지훼손을 감내하면서도 연구시설등의 건설을 허용한 연구단지특별법을 제정한 것 아닌가. 굳이 자연녹지를 만신창이로 만들지 말고 연구기관에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게 한다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옳은 말이라면 남의 말에도 귀기울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훈수가 적절치 못하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전혀 엉뚱한 결과가 빚어져 차라리 제 줏대를 지키는 편이 백번 낳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책임회피성 훈수 때문에 자신의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이란 자기 줏대를 버리고 남의 논리에 춤을 추는 행정도시건설청도 딱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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