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추병직 전 건설교통부장관이 물러나면서 읽은 이임사 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그는 자신이 발표한 부동산대책이 일파만파를 불러온데 대해 아쉬움과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재임 중 무난히 처리했던 사업으로 행정도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이전, 호남고속철도 등을 거론했다는 것이다. 그는 부동산대책 외에 다른 사업들은 잘 굴러가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지 모르지만 국민들이 보기에 그렇지 않다.

호남고속철 문제만 해도 그렇다. 계룡산에 총 3㎞가량 터널을 뚫어야 하는 것은 물론 많은 교량건설을 요구하고 있다. 터널이 산을 깎아내는 기술 중에서 자연환경훼손을 최소화하는 방법이고 필요한 공간만을 굴착하는 최신 공법이 있다는 점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터널과 교량을 건설하는 몇 년간 적지 않은 환경훼손은 불가피하다. 완공 후 호남고속철이 지나는 계룡산 지역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닐 것이라는 점은 보나마나다. 더욱이 다른 노선을 선택하면 계룡산에 삽질 한번 할 일이 없다는 게 주지의 사실이 아닌가.

현재 기본계획이 확정되고 기본설계 중인 호남고속철이 갖는 문제는 또 있다. 기본계획에서 확정된 노선은 경제성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통관련 전문기관들이 분석한 호남고속철 노선의 경제성은 0.39이다. 노선 경제성이 1.0은 되어야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뜻이니 이대로라면 얼마나 적자를 볼 것인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백번 양보해서 계룡산훼손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오송-남공주-익산-정읍-송정리-목포로 이어지도록 확정된 호남고속철 노선은 경제성이 없다. 현재 시간당 한 편씩 다녀도 평균탑승률이 겨우 40%에 그칠 만큼 승객이 없는데 이대로 건설된다면 과연 승객이 늘어날지 의문이다. 평균탑승률 40%는 좌석 10개 중 6개는 텅 빈 채로 달린다는 뜻이다. 호남고속철의 주 고객이 될 호남사람들도 이에 대한 불만이 크다. 노선이 확정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몰라도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다운 결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호남고속철 노선의 맹점은 호남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전주, 광주를 한참 비껴간다는 것이다. 전주, 광주 사람들이 고속열차를 타려면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 40-50분 걸려 익산역이나 송정리역으로 가야 한다. 이래서는 고속철도의 시간절감효과가 상쇄된다. 이는 사실상 전주, 광주 사람들이 고속철도를 외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호남을 위한 고속철도를 만든다면서 정작 호남 사람들이 이용하기 어려운 노선으로 건설된다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적은 돈도 아니고 무려 15조 원이 투입돼야 하는 국책사업이다.

장거리 또는 국제열차가 정차하는 파리 북역이나 파리 동역,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로마 떼르미니 역, 암스테르담 중앙역이 왜 외곽으로 이전하지 않고 파리나 프랑크푸르트, 로마, 암스테르담의 복잡한 도심을 고수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이들 역사(驛舍)는 대도시 외곽을 지나는 철도노선과 한참 떨어져 있다. 외곽의 주 노선과는 인입선로로 연결돼 있다. 즉 주 노선을 달려온 열차가 인입선로로 진입해 승객을 태운 다음 후진해 주 노선으로 옮겨 타는 방식으로 운행된다. 인입선로 진출입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들이 몰려드는 대도시 도심에 역사가 있어야 승객을 많이 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역이나 대전역, 서대전역을 도심 외곽으로 옮기지 않고 현재위치 그대로 둔 것과 같은 이치다. 건교부나 철도관련기관 종사자 모두 이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왜 이처럼 비상식적인 노선으로 결정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호남고속철 노선은 지금이라도 경제성을 갖는 노선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아울러 경제성을 극대화하자면 오송역이 아니라 청주·청원 75만 인구가 쉽게 탈 수 있는 청주도심 인근에 역사를 설치한 뒤 대전역에 정차하도록 하거나, 75만 인구를 배후에 둔 천안아산역에서 분기토록 해야 할 것이다. 애초 경제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건설한 10개 월드컵경기장에도 수익성 창출을 요구하는 요즘 시대에 경제성을 외면한 호남고속철 노선을 고수한다면 어쩌자는 것인지 걱정뿐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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