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은 역시 충청도 양반이었다. 국제 신사였다. 세계 대통령이라는 유엔 사무총장에 오른 그 공(功)을 ‘내가 잘나서’가 아니었다. 모든 공을 ‘나라 덕에’, ‘국민들과 충청인의 성원 때문’이라고 했다. 반 총장은 15일 유엔 사무총장직 인수를 위해 떠나기 앞서 특별 회견에 이어 13일 오후 대전 방문길에 본사 신수용 편집국장과 만났다.

-유엔 사무총장 당선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저 개인의 영광보다 세계인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높이 평가 해준 덕분입니다. 저의 외교적 개가는 그동안 온 국민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소산입니다. 영광은 국민에게 모두 돌려야 마땅합니다.

- 대전을 방문하셨는데 그간 고향 충청인 들에게는 남다른 애정을 표하셨어요.

▶도와주시고 격려해 주신데 감사드립니다. 이에 힘입어 2년 10개월간의 외교통상부장관직도 잘 마쳤습니다. 또 충청인 선, 후배님, 언론들의 지지로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습니다. 저를 키워주신 대한민국과 충청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임기 후 자랑스러운 귀향보고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당선자로 소감이 남다를 텐데.

▶분단국, 분쟁 당사자, 미국 동맹국 출신 후보이거나 일찍 선거전에 뛰어든 경우 당선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깼습니다. 이 고정관념을 깨고 1년간 투명한 과정을 거쳐 선출된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얼마전 고향 마을에도 다녀오셨지요. 분위기가 대단했다는데.

▶고향은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 행치마을입니다. 자동차로 음성읍내에서 청주방향으로 10분가량 달리면 오른쪽에 있어요. 지난 추석 때, 지난달 28일 충주시민 환영대회 때 갔어요. 충북도민과 고향 어르신들이 너무 기뻐하고 축하해주셨어요. 학교 동문과 후배들, 광주 반 씨 문중어른들 모두 제 손을 잡고 격려해줬어요.

-반 총장의 집안은 어떤 집안입니까. 행치마을 17가구 중 16가구가 반 씨 성이던데.

▶할아버지는 한의원을 운영했고, 아버지(반명환)는 청주 농고를 수석졸업하고 시와 붓글씨를 아주 잘 쓰셨어요. 통운회사 소장을 지냈으나 빚보증을 잘 못 서서 가족들이 고생도 했지요. 지난 91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작은 아버지가 충주 부시장을 지낸 반필환씨 입니다. 저는 5살 때 고향을 떠나 충주로 이사했어요. 제가 3남2녀의 장남인데 동생들이 모두 공부를 잘 했습니다. 첫 째 남동생(반기상)은 제일은행 지점장과 본사 이사를 지내고 정년퇴직했습니다. 둘째(반기호)는 보험금융감독원 호남지부장으로 있고, 첫 째 여동생(반정란)은 초등학교 교사, 둘째는 약사로 일합니다. 충주여고 학생회장출신인 제처 (유순택 .62)와는 충주고와 충주여고 학생회장단 교류 때 만나 결혼했습니다.

-외교관은 그 자제들도 외교관으로 키운다는데.

▶저는 1남2녀의 자식을 두었습니다. 큰 딸(반선용.36)은 아시아재단 사업부장, 둘째 딸 (반현희.31)는 유엔아동기금(UNICEF) 케냐사무소에서 국제기구초급전문가로 일해요, 아들(반우현.33)은 서울대 공대를 나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에서 MBA 과정 중입니다. 제 아들은 청와대 외교 수석일 때 자원해서 해병대를 다녀오겠다고 해서 보냈어요. 저는 학군장교(ROTC)후보생이었으나, 초급장교 임관을 하지 못했어요.

- 고교생 때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에게 외교관이 꿈이라고 했다는데.

▶6.25전쟁 후 당시 학생이라면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애국이었어요. 저는 외교를 잘해서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야한다고 믿었어요. 그러려면 영어는 필수 아닙니까. 충주고 2학년 때 대한 적십자사가 주최한 영어경시대회에서 1등을 하고 이어 주한 미 대사관이 주관하는 프로그램에 한국 대표로 뽑혀 난생 처음 미국 땅을 밟고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그때 케네디 대통령이 꿈이 무엇이냐고 묻더군요. 사실대로 ‘외교관’이라고 답변했고 목표대로 외교관이 된 것입니다.

-후배인 윤진식 전 산자부 장관의 말을 빌면 영어 신동였다면서요.

▶제가 충주고 2학년 때 윤 전장관은 충주중 2학년이었을 겁니다. 제가 미국에서 돌아 온뒤 뒤 어느 날 교장선생님이 충주중·고등학교 전교생을 운동장에 불러 모았어요. 미국 적십자사 초청으로 미국을 견학하고 케네디 대통령까지 만나고 온 이야기를 전교생에게 들려주라는 것이지요. 얘기를 듣고 부족한 저를 대단한 선배라고 믿었을 겁니다. 제가 어릴 때 충주 비료공장에 미국인들이 와서 공장건설을 했는데, 그때 미국인들을 찾아다니며 회화공부를 했고, 고 2때 회화를 마스터 했습니다.

-엊그제 37년 정든 외교부를 떠나는 감회가 남달랐을 텐데요.

▶보통 장관직을 떠나면 허전한게 인지상정인데 많은 사람들이 저는 기쁜 마음으로 떠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어요. 허전하고 쓸쓸한 심정이 될 수밖에 없다고 소회도 밝혔지요. 무인도에 내동댕이쳐진 듯 허탈감과 상실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아쉬움도 크지요.

▶37년 재직하는 동안 김선일씨 피랍사건이 발생했을 때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김씨 납치사건 당시 전 국민들이 좁게는 외교부, 크게는 정부에 대한 분노와 실망을 표시했을 때 매우 가슴이 아팠고, 공직자로서 큰 책임을 느꼈어요.

무엇보다도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정착 등 안보 분야를 일정한 궤도에 올려놓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 유엔 사무총장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유엔 사무총장은 국가원수에 준하는 예우를 받고, 지명도에선 미국 대통령에 버금가며 도덕적 권위면에서는 교황에 종종 비유된다고 합니다. 사무총장은 192개 회원국의 이해관계를 중립적이고 공평무사하게 해결하는 국제 외교의 수장인 셈이지요. 갖가지 분쟁을 중재하는 심판(중재)자이기도 해요. 그래서 세계 대통령으로 칭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권한과 권리를 행사합니까.

▶내년 1월1일부터 5년간의 공식 임기를 시작하며 예산 50억 달러와 9만2천여명의 평화유지군 등 유엔 행정을 총괄하게 됩니다. 총장은 유엔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 경제사회이사회, 신탁통치이사회 등 모든 회의에 사무국 수장 자격으로 참여하며 국제분쟁 예방을 위한 조정과 중재 역할에 있어 독자적 정치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 전 세계 1만6,000여명의 유엔 직원에 대한 인사권과 막대한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집니다. 중요한 위치인 만큼 24시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전담경호를 받게 되며 뉴욕 맨하탄 외곽의 서톤플래시스에 위치한 별도의 관저에서 살게 됩니다. 상징적인 의미로 1년에 1달러의 비용을 낸다고 합니다.

-급료도 궁금한데요.

▶글쎄요.(기자가 찾은 자료에는 유엔사무총장의 연봉은 1997년 이래 22만7,254달러(약 2억원)로 책정돼 있으며 개인 활동을 위한 판공비와 경호비용을 추가로 지급받는다. 이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작년 연봉인 40만 달러(3억8000여만원) 보다는 낮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올해 직급보조비와 정액급식비를 포함한 실질 연봉 1억9,600 여만원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유엔 총장이 되면 무슨 일을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 있습니까.

▶최근 외신에 보니 제 별명을 기름 장어라고 하더군요, 유엔총장은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일을 하는 자리,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희생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럴 때 `기름장어`라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특히 유엔 192개국 사이에는 불신이 많고 잘사는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에 편이 갈라져 있습니다. 불신역시 심각합니다. 때문에 양 계층간 다른 의견을 연결해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귀가 열린 사무총장이 되겠습니다.

- 다른 일도 많지 않습니까.

▶유엔이 추구하는 3대 목표인 국제평화·안보 개발, 공동번영, 인권 신장 가운데 저개발국의 개발·공동 번영에 역량을 집중시키겠습니다. 즉 빈곤 없는 세계, 평화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겠습니다.

-평소 유엔개혁을 강조하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유엔 회원국들 간에, 또 회원국과 사무국간에 불신에 대해 개탄합니다. 자체적으로 신뢰 회복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그 방향을 열심히 일한데 대한 보상과 비행에 대한 효율적 감시를 통해 스태프들의 도덕성을 강화하는데 맞추겠습니다. 한국의 혁신적인 개혁을 도입했던 경험을 활용, 재임기간 유엔을 21세기 세계 최고 수준의 기구로 만들 것입니다.

-총장의 성공여부는 취임 후 100일에 달렸다고 합니다. 조직 개편 등의 과제는.

▶인수위는 지난 1일에 출범했습니다. 내년 초에는 100일 과제, 1년 과제, 5년 과제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할 계획입니다. 급한 것은 인선입니다. 사무차장, 사무차장보급 인사들이 내년 2월28일자로 계약이 만료됩니다. 인사가 만사라고 보고 사무국의 사기를 진작시면서 전문성을 높일수 있는 방향에서, 남녀 양성간, 지역간 균형도 감안할 생각입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차기 총장으로서 복안은 무엇입니까.

▶저는 한국의 사무총장은 아니지만 여전히 한국인 사무총장입니다. 특히 제가 직접 관여한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유지에 대해서는 권한을 최대한 활용, 평화적으로 해결되도록 하겠습니다. 때문에 재개될 6자회담이 성공하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이 회담의 진행도 잘 지켜보면서 잘 되도록 격려, 촉구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신임 대북 특사를 임명할 생각입니다. 특히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내년 1월 공식 업무가 시작되면 6자 회담 참가국들과 협의해 직접 북한을 방문하겠습니다.

-유엔의 대북 제제 안의 수위를 놓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6자 회담에서 북한의 태도와 합의 실천 여부에 따라 유엔의 대북 제재 수위가 조정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안보리 제재는 북한에 대한 제재가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북한을 핵무기를 포기하고 6자회담 복귀를 위한 외교적, 정책적 수단의 하나입니다. 북한이 6자회담에 호응하고 지난해 9월 채택된 공동 선언을 이행해가면 대북 제재 문제는 안보리 이사국들 간에 다시 협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엔 총회가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해 표결할 예정인데, 우리 정부가 어떤 선택할 지 주목되는데요.

▶ 유엔 총회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을 표결에 부치는 것은 두 번쨉니다. 유엔 인권위는 2003년부터 3년 내리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했고, 정부는 기권또는 불참해 왔어요. 그러나 사정이 다릅니다. 국제사회는 북한 인권에 침묵하기보다 적극적인 입장표명을 요구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했고, 유엔 인권부고등판무관에 진출한 국가입니다. 또 지난 5월 유엔의 초대 인권이사국으로 선출됐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높아진 만큼 책임도 커진 것이지요.

-당선 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만났는데 무슨 이야기를 나눴습니까.

▶ 부시 대통령을 만나려 했는데, 중간선거를 앞두고 바쁜 상황이었어요. 부시 대통령과 20분 이상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앉자마자 ‘미스터 랜드슬라이드(압승)’라며 축하해 줬고, 유엔 개혁과 북한 핵, 두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나눴습니다. 유엔 개혁에 대해선 미국이 적극적으로 도와 주겠다고 했어요. 북한의 핵 문제는 북한의 2차 핵실험설이 나오고 있어 신경을 많이 쓰더군요. 부시 대통령은 그럼에도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자주의인 유엔과 일방주의인 미국은 갈등이 잦은데요.

▶그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코피 아난,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과 미국의 갈등을 예로 들며 유도심문을 할 때도 있어요. 누구보다도 유엔과 미국과의 관계, 유엔의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은 유엔 분담금도 가장 많이 내고, 초강대국으로 유엔의 가장 중요한 회원국임에 틀림이 없지요. 유엔은 미국의 적극적인 참여와 도움 없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미국의 입장에서도 민주주의 확산, 세계 공동번영, 인권신장 등 미국이 전 세계와 함께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을 가장 잘 대변하고 이행해 갈 수 있는 도구가 유엔입니다. 유엔도 미국을, 미국도 유엔을 서로 필요로 합니다. 어떤 총장보다도 유엔과 미국 간의 관계를 잘 조화롭게 처리할 겁니다.

-안보리 상임 이사국을 차례로 방문했는데 그중 중국 후진타오 주석과 나눈 얘기는.

▶중국에서 후진타오 주석과 리자오싱 외교부장, 탕자쉬안 국무위원을 만났습니다. 후진타오주석은 유엔 개혁에서 차기 총장의 역할이 중요하며 중국이 적극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북핵 문제와 관련, 지난달 노대통령의 실무방문 정상회담에서도 좋은 얘기를 나눴고, 중국 정부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 프랑스, 러시아 방문도 이어졌는데.

▶저에게는 상임 이사국 5개국의 적극적인 역할과 협조가 중요한 만큼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습니다. 특히 프랑스가 유엔 평화유지군이나 국제정치에서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지원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어요. 러시아도 북핵 문제 해결에 건설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최근 북핵 문제에 열의를 보이고 있어요. 유엔과 국제 사회에 협력문제에 대해 긴밀히 대화를 나눴어요.

-최근 일본의 핵 무장 논의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는데.

▶북한 핵 실험 이후 일본 내 유력 정치인이 핵 무장을 거론하고 있는 것에 대해 차기총장으로서 우려하는 바가 큽니다. 주요 회원국이고 세계에서 중요한 국가인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일본도 6자회담에 중점을 두어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주변 지역 국가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핵무장론은) 여러 측면에서 일본의 미래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안보리 상임 이사국 확대와 일본, 독일의 안보리 참여를 어떻게 봅니까.

▶ 민감한 문제입니다. 사무총장의 역할은 중립적이고, 불편부당합니다. 때문에 객관적인 입장에서 회원국들이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쪽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총장 출신국인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위해선 무엇이 필요합니까.

▶현재 16개 지역에 유엔 평화유지군 9만2천명이 나가 있는데, 그 중 한국은 31명뿐입니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로서 기여도와 의지 면에서 너무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국제 문제를 보는 시야를 넓혀야 해요. 국제사회의 기여와 적극적 참여가 확대되어야합니다.

-젊은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얘기는.

▶ 44년 전인 1962년 충주의 한 고교생으로 한 달 간 방문한 미국은 제가 해외로 첫발을 내디딘 나라였습니다. 지금 내 심정은 그때와 같습니다. 분골쇄신의 각오로 세계평화와 번영을 위해 일할 생각입니다. 모든 분들에게 받은 사랑과 성원을 아낌없이 나눠줄 준비가 돼 있지만 그 주머니는 노력하는 사람만이 가져갈 수 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격언을 잊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정리=김형석.정재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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