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전에 들은 얘기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친 한국 여자가 그 곳의 남자와 가정을 이뤘다. 그들 부부는 공교롭게도 양쪽의 어머니와 한 집에 살게 됐다. 여자 쪽에서 보면 친정어머니와 미국인 시어머니를 함께 모시게 된 셈이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는 언어는 물론 살아온 환경과 문화, 정서가 너무 달라 늘 티격태격했다. 한 번은 세 살배기 어린 애가 독감이 걸렸을 때다. 어린 애가 칭얼대자 보다 못한 친정어머니가 이래야 낫는다며 어린 애를 뜨거운 온탕에 집어넣는다.

이를 보고 미국인 시어머니가 기겁을 한다. 오히려 열을 식혀야한다며 온탕에 있던 어린 애를 냉탕으로 데려간다. 감기 걸린 애를 두고 친정어머니는 뜨거운 곳에서 땀을 내야한다고 우기고, 시어머니는 열을 식혀야한다고 고집을 폈다.

-YS, DJ 냉.온탕 훈수싸움격.

자신도 땀을 내고 푹 쉬어야한다고 믿어 온 터라 친정어머니의 훈수에 가세했다. 그러나 남편은 시어머니의 훈수에 편을 들었다. 결국 한국인인 딸과 친정어머니는 온탕 쪽을, 미국인과 시어머니는 냉탕 쪽으로 갈렸다. 훈수싸움에 냉, 온탕을 들락댄 어린 애는 새파랗게 질려 콜록댔다.

뒷방에 있던 YS(김영삼), DJ (김대중)의 훈수와 행보가 정치판을 뒤흔든다. 북한의 핵실험 충격을 틈타 무슨 말이, 누구 말이 옳은 지 분간하기 어려운 판에 이 들의 한 마디 한 말씀은 더욱 혼란스럽다. 심지어 청와대 회동이나 내외신 회견 등에서 ‘내 말이 맞다’며 훈수하는 모양새는 가관이 아니다.

북한이 핵실험한 다음날 청와대에서 만난 YS와 DJ는 그 해법을 놓고 얼굴을 붉혔다. YS는 DJ 면전에서 사태는 햇볕정책 때문이라며 대국민사과와 함께 즉각적인 정책수정을 요구했다. DJ는 수긍하지 않았다. 그는 북한의 핵실험을 용납할 수 없어도 경제 제재는 안 된다며 햇볕정책의 지속유지를 주장했다.

YS, DJ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유엔의 대북 제재안 결의에 대해서는 견해차가 컸다.그 중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PSI)`에 대한 참여와 범위를 놓고도 상반됐다. YS는 유엔 방식에 적극 동참해 북한에게 본때를 보이자는 것이고, DJ는 그 반대다.

이 들의 2라운드는 역시 왕년의 9단들답게 맞붙은 장외 훈수대결. YS는 내외신 회견 등을 통해 DJ 정권,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진 대북 정책실패를 싸잡아 비판했다. 그는 두 정권의 남북경협이 북한의 군비 증강의 직접적 원인이었다고 들고 나왔다. 이제라도 중단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해법이다.

DJ는 YS와 180도 달랐다. 북한의 핵실험 직후 노대통령이 대북정책수정을 시사하자 곧바로 청와대에 전화를 걸었다. 대북정책의 변화는 곤란하다는 메시지도 전했다. 정치개입을 일축한 그는 그 뒤 고향인 목포로 향했다. 그는 환영 집회 등에서 대북 압박대신 포용입장을 재천명했다.

YS, DJ의 치열한 설전 속에 노 대통령의 입장은 어땠을까. 역시 YS 대신 DJ의 대북 햇볕정책의 편이었다. 경제적 지원을 끊고 대북 압박을 가할 경우 남북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DJ의 손을 들어줬다.

노 대통령은 최근 한 공식석상에는 북미 간 북핵 충돌위기가 조성된 1993년 상황과 당시 YS를 소개하며 “이제는 그때처럼 대화 단절을 선택, 상황을 악화시키는 대통령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피력했다.

그래선지 노 대통령부부는 지난 주말 DJ의 동교동 집을 찾았다.

나눈 대화는 그들밖에 모른다. 북한 핵실험 해법과 수도권 부동산정책에 대한 조언차원이라고 밝힌 게 전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내년 말 있을 대선을 앞두고 여권의 정계개편, 나아가 대북정책을 계승할 후계자 내세워 정권 재창출은 논의 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문제는 자리를 떠나 뒷방에 있던 YS, DJ의 정치 훈수다. 위기에 놓인 나라꼴을 보고 한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도를 넘으면 순수성을 잃는다. 말로는 정치 불개입이지 사실이 그렇느냐 말이다. 지역갈등에 자유롭지 못한 두 사람이 영.호남 정치에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순수성을 의심받는다. 그 들의 요즘 정치 훈수들을 보라. 제 치적 자랑이 아니면 정치 갈등을 부추기는 훈수는 곤란하다. 나라가 반듯하고,국민이 편하게하는 9단의 훈수

가 그립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