功過따져재위촉여부결정을

사나이로 태어나 일생에 꼭 해볼 만한 직업이 3개 있다고 한다. 전쟁 지휘관과 프로야구 감독, 그리고 오케스트라 지휘자다. 모두가 막강권한을 갖는 자리다. 만인의 우러름을 받는 화려한 직업이기도하다. 다만 전쟁이 뜸해진 요즘 군 지휘관은 여기서 빼자. 필자가 다시 태어난다면 야구감독이나 지휘자는 꼭 해보고 싶다. 무한한 작전구사와 다양한 소리를 빚어내는 단체의 리더가 얼마나 멋진가.

나는 대전 연고의 프로야구 한화이글스와 대전시립교향악단을 사랑한다. 훌륭한 감독과 지휘자가 있어 더욱 그렇다. 나는 이들 두 단체의 창단 첫 경기와 첫 공연을 가 본 사람이다. 한화(당시 빙그레)는 86년, 대전시향은 84년에 각각 창단했으니 20년 남짓 된다. 덕장 김인식의 한화와 명장 함신익의 시향(市響)은 최근 놀랄만한 성장으로 지역은 물론 전국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온 게 사실이다.

김인식은 올봄과 가을 한국의 세계야구대회 4강 신화와 한화의 코리안시리즈 준우승을 일궈냈다. ‘믿음의 야구’와 신출귀몰한 그의 작전은 야구팬들을 사로잡았다. 덕장인 그가 최근 코리안시리즈에서 보여준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필자도 포스트시즌 두 게임을 보고 그의 작전과 지도력에 탄복했다. 김 감독은 일찍이 구단으로부터 재계약 약속을 받는 등 최고의 2006년 한해를 구가했다.

그와 반대로 대전시향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함신익은 현재 지휘봉을 놓을 위기에 처해있다. 그동안 그의 재위촉 여부로 논란을 거듭한 끝에 불가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다. 이제 박성효(朴城孝)시장의 재가만 남은 것 같다. 두 名將의 운명이 극명하게 대비돼 안타깝다. 함신익은 지난 2001년부터 6년 동안 강한 카리스마로 대전시향을 국내 유수의 교향악단으로 격상시키는데 성공했다.

KBS와 서울시향을 제외한 국내 수십 개 교향악단 중 대전시향이 국내 톱클래스에 오르는데 함지휘자의 공이 컸음은 누구도 부인 못한다. 그는 어려운 클래식을 팬들에 쉽게 접근시켰고, 각종 시리즈와 이벤트를 만들어 흥미를 끌게 했다. 마스터시리즈와 디스커버리시리즈 등 기획연주는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한다. 어렵다는 말러시리즈를 8번이나 연주했고 ‘전쟁 레퀴엠’(브리튼)도 국내 초연했다.

외국인 5명을 포함한 우수단원확충으로 악단의 수준을 높였다. 그런 그가 왜 재위촉이 안 되는가. 지휘자가 강압적인데다가 단원들과의 불화와 편애, 인격모독 등이 이유라 한다. 단원 투표결과 60% 가까이가 지휘자교체를 원했다고도 한다. 일견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그게 재위촉의 최대 걸림돌이 돼야 하는가. 6년간 그의 공과(功過)를 따져 재위촉여부를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일반적으로 지휘자는 십인십색(十人十色)이다. 악보에 충실한 지휘자와 해석에 주관성이 강한 지휘자 등 다양하다. 지휘나 연습 때도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 지휘자는 또 자신의 의사를 단원들에 전달키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한다. 20C 최고의 거장 토스카니니는 리허설 때 마음에 안 들면 지휘봉이나 악보를 집어 던지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그를 ‘군악대장’ ‘밴드마스터’라 했겠는가.

브루노 발터는 실수를 거듭하는 단원에게 웃으며“젠틀맨”이라 했다한다. 단원 통솔에 폭군 형이 있는가하면 인간적으로 대하는 지휘자도 있다. 함씨가 단원들과 인간적인 신뢰를 쌓지 못한 것은 잘못이나 그 게 어느 정도냐가 문제다. 대전시 고위간부의 “너무 오래해서 바꿔야 한다”는 말은 궁색한 변명이다. 세계유수의 교향악단은 지휘자에게 보통 10년-20년 이상씩 임기를 보장해준다.

창단 120년이 넘는 베를린필은 현 사이먼 래틀을 포함해 6명 째다. 4대의 카라얀은 36년, 푸르트뱅글러는 33년을 지휘했다. 함신익도 큰 잘못이 없다면 더 오래 지휘봉을 맡겨야 옳다. 단원들에 얼마나 군림했고 인격 모독 행위를 했는지 필자는 모른다. 큰 잘못이 있다면 바꿔야한다. 다만 함지휘자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을 영입해야한다. 적어도 10-20년 이상은 맡길 수 있는 지휘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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