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제과비법 3대째 대물림, 입에서 얼음처럼 녹아 빙사과, 외국귀빈ㆍ혼례음식으로 인기

‘길마중’이라는 것이 있었다.

살림 손끝이 맵고 가르침도 엄하셨던 할머니가 먼 길을 다녀오시는 날이면 집안 여자들이 분주해진다.

어머니는 평소에 먹기 힘들었던 맛깔난 음식을 장만하고 내심 흠잡힐 곳이 있을까 음식의 맵씨며 부엌 구석구석을 두루 살피셨다.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 두고는 집안사람들을 이끌고 시어머니가 오시는 마을 훨씬 너머까지 마중을 나가셨다.

마중 나온 며느리가 밉지 않은데다, 집에 도착하자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고 있으니 더욱 며느리가 귀여운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조선시대 궁궐에서나 먹을 수 있었던 전통한과인 ‘빙사과’를 3대째 대 물림으로 이어오고 있는 이병옥 여사(59).

어렸을 때부터 길마중의 미덕을 보고 자란 그에게 빙사과는 길마중 때나, 귀한 손님이 오셨을 때 정성스레 내놓았던 귀한 음식이다.

튀겨낸 찹쌀 반죽이 투명한 구슬 같고 입안에 넣으면 얼음처럼 살그머니 녹아 버린다고 해서 ‘빙사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시댁은 음식 가풍이 엄한 반가의 집안이었다. 시집오고 나서 시조모와 시어머니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집안음식을 하나하나 전수받으면서 빙사과 만드는 법을 배웠다.

시조모는 집으로 찾아오는 귀한 손님들에게 꼭 빙사과를 내어 접대를 하곤 했다.

빙사과는 만들기가 힘들고 까다로워 익히기가 쉽지 않았다. 지극정성과 까다로운 손맛, 적지않은 시간을 버무려야만 맛을 낼 수 있는 음식이어서 더욱 귀하다.

살림 솜씨 엄한 할머니와 어머니 밑에서 음식을 배워 손맛이 깔끔하고 좋아 친정이나 시댁에서 칭찬이 자자했던 그였기에 그 비법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었다.

빙사과가 시댁의 대물림 음식이 된 건 시조모인 유씨가 그 비법을 배우면서부터.

유씨는 구한말 당시 도승지를 지낸 윤자경의 부인으로, 잦은 궁궐출입 기회를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빙사과 제조비법을 익히게 됐다고 한다.

윤씨 집안의 빙사과 맛은 시조모와 시어머니를 거쳐 넷째 며느리인 이 여사에게 차곡차곡 이어져 내려오면서 맛과 깊이가 더해졌다.

이렇게 3대를 이어오면서 빙사과는 입 소문을 타고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맛과 품격에 반한 이들이 혼례음식이나 값진 선물로 빙사과를 찾았다.

이 여사가 빙사과 비법 전수자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지난 95년 무렵.

궁중음식을 두루 배울 욕심으로 궁중음식연구원을 찾아가 궁중요리 기능보유자(궁중음식 중요무형문화재)인 황혜성 선생으로부터 혼례음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 빙사과의 제조비법을 몰랐던 황 선생이 빙사과 맛을 보더니만, 덜컥 빙사과 선생이 돼달라고 했다.

서울과 천안을 오가며 5년간 궁중음식연구원에서 빙사과 강사로 활동하면서 윤씨 집안의 빙사과 제조비법을 소개했다.

궁중음식 연구에도 온 힘을 쏟아 이젠 한과에 관한 한 일가를 이룰 만큼 이름 있는 전문가가 됐다.

지난 2000년 서울에서 열린 아셈행사에 직접 만든 빙사과 등 궁중음식을 출품해 세계 각국 정상들에게 한국 전통궁중음식의 맛을 알리기도 했다.

빙사과는 외국 귀빈들과 바이어의 선물용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고, 빙사과맛을 본 외국인들이 더 찾는다.

명절 때는 유명백화점과 빙사과 마니아들로부터 주문이 잇따르고 혼례음식으로도 인기가 그만이다.

3대를 이은 손맛이 담긴 음식이기에 그 맛과 품격은 가히 국보감이다.<高慶豪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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