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의 등대’ 오서산

천수만 일대에서 조업을 하는 어선들이 나침판으로 삼아 ‘서해의 등대산’이라 불리는 오서산. 맑은 날이면 안면도의 푸르른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지금 이곳은 정상을 중심으로 주능선을 따라 펼쳐진 은색물결, 억새꽃이 점령했다.

억새꽃은 건조한 산자락이나 들녘에 피는 것으로 습지대에 군락을 이뤄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며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갈대와 달리 산정상까지 힘겹게 올라와야만 하늘거리는 거대한 융단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홍성과 보령의 경계이 있는 오서산(해발 741m)은 과거 까마귀가 많이 살아 ‘까마귀의 보금자리’라는 오서(烏棲)에서 유래된 명칭이나 지금은 보이질 않는다.

충남 제 3의 고봉으로 금북정맥의 최고봉이지만 꿩이 푸득거리는 요란한 소리에 여행자가 놀라고, 도토리 모으기에 정신없는 다람쥐가 낙옆을 헤치는 소리가 들릴 만큼 사람 손이 덜 탄 곳이기도 하다.

기자는 지난 11일, 유난히 안개가 짙고 돌풍이 불었던 날 오서산에 올랐다. 보령시 청소면 성연마을-성골-시루봉-정상을 오르내리는 3-4시간 남짓한 코스로 골랐다.

성연 주차장에서 오서산 자락에 닿기까지 성골마을은 전형적인 시골풍경이었다.

마당에는 고추와 콩 등 수확물이 널려 있고, 마당에는 주황빛으로 물드는 감이 주렁주렁 메달렸다.

10여분 뒤 밤나무로 가득 들어싼 성골로 접어들었다. 나무 밑에는 이미 수확을 끝낸 밤송이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이곳도 경사가 급해 본격적인 등산로에 접어들기도 전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성골을 벗어나 임도를 사이에 두고 본격적인 등산로가 열려있다. 경사가 40도가 넘는 가풀막길에, 좁고 험한 오솔길이 겹겹히 이어졌다. 안개가 짙어 주위 풍경은 고사하고 불과 10여m 앞도 뿌옇게 아른거렸다.

여기저기 박혀있는 바윗돌에, 조금만 발을 잘못 디뎌도 미끄러는 메마른 흙길. 게다가 어깨가 연신 나뭇가지에 스칠 만큼 폭도 좁았다. 잡목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겨져 이렇다할 절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시간쯤 지루하게 올라가서야 시루봉에 도착했다. 양쪽(주차장과 정상)으로 정확히 1.8㎞ 거리에 있는 좁은 쉼터였다.

다시 30분 힘든 산행끝에 갑자기 시야가 확 트였다. 끝없을 것같던 경사면 끝에서야 갈대밭 초입에 다달았다.

여전히 앞은 흐렸지만 억새의 손짓이 계속 이어졌다. 정상까지 올랐으나 날씨 탓에 밑에 풍경도, 억새밭의 장관도 볼 수 없었다.

사실 이곳 억새밭의 풍경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 보면 대단할 것까지는 못된다. 능선이 시작되면서 정산까지 억새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등산로 옆 산비탈에 수백평씩 흩어져 있다. 정선의 민둥산, 장흥의 천관산처럼 빼곡하지 않고, 울산의 취서산, 밀양의 사자평같이 길게 뻗어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곳이 가을 억새명산으로 꼽히는 이유는 해넘이와 어우러진 억새꽃의 모습이 광할한 억새평원에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빛을 빨아들이듯이 황금빛에서 진홍빛으로 다양한 색을 연출하는 억새의 아름다움은 이곳만의 정결이다.

기자는 이날 산행에서 어느 하나 절경을 맛보지 못했다. 안개가 억새꽃까지 집어삼켜 흐릿한 시야에서 외로운 산행을 해야 했다.

마침 이날은 성골마을에서 밤을 줍던 등산객 몇몇을 봤을 뿐 산에 올라 만난 사람도 없었다.

내려올 때는 다리가 풀려 걸음이 더뎠다. 등산로를 내려다 보니 어떻게 올라왔을까 싶을 정도로 경사가 심했다.

오서산은 어디로 오르든지 비탈진 경사가 많고 길이 험해 등산화와 산악지팡이 등 산행도구를 챙겨가야 한다. 일행 중 산행에 익숙치 않은 사람이 있다면 산행시간을 1-2시간쯤 더 예상하고 산에서 먹을 음료와 간단한 간식은 충분히 챙겨가길 바란다.

날이 좋았다면 억새밭에서 한껏 아름다운 절경을 포식한 뒤 갈대밭으로 기울어가는 해넘이를 보고 싶었건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침녘 부서지는 해살에 하늘거리는 억새를 만나려 한다. 흐린 시야에서도 바람결에 고객짓하며 다시 한번 찾아달라는 갈대의 유혹이 생생히 남아있다.<宋泳勳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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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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