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보다 비가 내리는 날이 숙면을 취하기 좋다고 한다. 알파파(α波)는 편안한 상태나 집중하기 좋은 상태가 되면 나오는 뇌파인데, 자연 백색 소음(白色騷音)인 빗소리가 알파파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기계 소음이나 교통 잡음과 같이 그것을 지속적으로 들을 때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듣기를 원치 않는 소리가 있는데, 그 이유는 소음이 불연속적인 스펙트라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음은 머리를 산만하게 하는 베타파(β波)라는 뇌파를 유도하므로 듣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소음에도 유익한 소음이 있다. 이를 백색 소음(white noise)이라고 한다. 백색 소음은 일정한 주파수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신호로서, 거슬리는 주변 소음을 덮어주는 작용을 한다. 또 베타파를 감소시키고 심신이 안정될 때 나오는 알파파를 유도한다. 파도소리, 빗소리, 폭포소리 등이 대표적인 백색 소음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진공청소기 소리나 채널을 잡지 못했을 때 TV에서 나오는 잡음도 백색 소음에 속한다고 한다.

우리 교육에도 백색 소리가 있다. 민주화의 바람이 불던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길거리 농성집회가 생경하게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작고 약한 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공공 기관이나 사업장 주변에서 벌이는 시위나 농성의 풍경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개방화·다양화 시대로 갈수록 이익집단의 소리도 다양해지며, 소리의 내용이나 음질도 여러 가지다. 민주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현상들이다. 듣기 싫다고 귀를 막아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교육계도 예외는 아니다. 교육구성원이 다양하기에 목소리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을 보는 우려의 소리도 만만치 않다. 주장에는 공감하면서도 더러는 부작용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때로 서로간의 이익이 상충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아이들을 위하는 길이고 교육을 위하는 방법이라면 교육구성원이 내는 각양각색의 소리는 교육을 위한 백색 소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거시적 안목으로 개방화·다양화 사회라는 시대의 트렌드 속에서 한국 교육이나 미래 교육 발전을 위한 연속적인 스펙트라의 소리로 생각하고 알파파의 뇌파를 유도하기 위한 긍정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 점은 소리를 내는 쪽이나 받아들이는 쪽에서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소리를 내는 쪽에서도 알파파를 내는 소리가 아니라 베타파를 내는 소리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밤늦도록 TV를 시청하다 전원을 끄지 않은 채 깊은 잠에 빠질 때가 있다. 방영 시간을 넘긴 TV는 밤새도록 홀로 쌕쌕거리며 백색 소리를 낸다. 밤새 낭비된 전기 에너지도 아깝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기는 더욱 어렵다. 현실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흔히 공교육의 위기, 학교 교육의 약화를 걱정하는 사회현실 속에서 교육력을 낭비하는 백색 소리도 가려서 낼 줄 아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가을이 왔다. 성급한 나뭇잎은 고운 물을 들이기 위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오행(五行)의 속성을 모든 사물에 적용해서 풀이하는 한방에서는, 가을은 만물이 무르익고 모든 기운이 안으로 모여드는 시기라고 한다. 즉 영양분을 안으로 축적하는 시기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2006년 알찬 교육 결실이 맺어지기 위해선 일년 중 가장 밀도 있는 교육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각종 행사와 짧은 수업일수로 인하여 자칫 소홀해지기 쉬운 교육활동이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학교 현장은 학생이나 학부모 등 교육가족이 내는 백색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대전교육의 가을을 곱게 물들여 가길 소망한다.

김신호<대전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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