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누구든 민심에 민감했다. 한 언론이 최근 조사한 그들의 민심 청취방법도 공조직 정보라인 외에 다양했다. 그중 박정희 전 대통령은 주로 현장을 찾았다. 불시에 비서실장, 경호원만 데리고 산업현장, 시장, 공사장에서 민초들을 만났다.

참모들과는 때때로 막걸리 회식을 열었다. 휴가 때는 별장으로 출입기자들을 불러 함께 막걸리잔도 기울였다. 취중에도 이들로부터 국정의 문제점, 각료의 무능, 대통령에 대한 쓴 소리와 풍문까지 놓치지 않고 들었다. 당시 육영수 여사역시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뉴스를 듣고서 남편이 퇴근하면 ‘라디오에서 이런 뉴스가 나오더라’ 고 귀띔하곤 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은 신문에서 바깥세상을 읽었다. 오랜 정치인 생활로 정보 채널이 풍부했던 그는 개인 독대 외에 언론에서 그것을 찾았다. 청와대 공보수석실로부터 아침마다 신문보도내용을 보고 받고, 사안이 있을 때는 보고서도 내게 했다.

-바닥 민심확인은 현실직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민주적이었다는 DJ는 장관과 비서진들에게 ‘이런 기사가 났더라’, ‘어느 지역에 이런 게 있더라’며 화제로 올릴 만큼 주요 지방신문까지 정독을 했다. TV 뉴스와 토론 프로그램 등에서도 바닥 민심을 확인하곤 했다.

YS(김영삼)전 대통령은 일과 후 전화 민심탐방을 즐겼다. 취임 후 안기부 정치개입금지령을 내린 그는 자신의 노트 두 권에 적힌 인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민심을 들었다. 오랜 친구든, 행사장에서 악수만 나눴든 노트에 적혔으면 그 대상이었다.

때문에 YS의 ‘나, 김영삼이야’하는 전화를 받은 상대들은 장난 전화로 알고 ‘너, 누군데 장난을 쳐 임마’하고 화를 냈다가 사과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비선 채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지인들과 칼국수 오찬을 하며 바깥 세상에 귀를 열었다.

열 사람이면 열 마디, 백 사람이면 백 마디의 말(言)이 생긴다는 추석 명절이다. 민족의 대이동이지만, 실은 민심의 대이동인 셈이다. 떠도는 것이든, 수면 아래 것이든 이곳저곳서 뒤엉킬 것이 뻔하다. 3000만 명 이상 이동을 한다니 민심의 폭풍은 위력적일 것 같다.

올 추석 민심 역시 최악이다. 차례상을 준비하는 집집마다 웃음 뒤에 한숨과 자탄들이 섞여있다. 단연 정치권의 무능, 무기력, 무책임에 대한 실망과 불신을 넘어 분노에 가깝다. 희망을 상실하여 아예 입을 다문 민의가 그것이다.

명절은 정치권이 표밭의 민심 지수를 체크하기 좋은 기회다. 정치권은 폭발직전의 민심을 감지한 듯 겸허하게 수렴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청와대 따로, 정부 따로, 여야 따로 상대를 원망하고 탓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등 돌린 민심이 돌아설지는 미지수다.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 전 경제지표들을 열거하며 희망을 갖자고 호소했어도 ‘저 양반 민심을 제대로 알고 하는 소리냐’는 역풍에 직면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무현식 인사를 했다고 외쳐도 코드인사니, 회전문 인사로 매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권의 지지율이 10-20%대다. 그래서 뒤늦게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 여기 저기 수당을 높여 주겠다, 아파트 분양가를 공개하겠다, 개발하겠다며 서민 정책들을 내놓아도 냉랭하다. 되레 내년 대선용 사탕발림이 아니냐며 순수성마저 의심받는다.

-추석 민심 어루만져 희망줘야

여당이 내년 말 대선에 나설 당 후보 결정방식을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개방형 국민경선제)’란 카드를 내놔도 반응이 예전 같지 않다. 오히려 ‘나라를 이 꼴로 해놓고, 또 집권하겠다는 거냐’는 비아냥이 일 정도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야당치고 역대 최약체란 오명 속에 정권 교체대안 세력치고는 무기력과 끊임없는 각종 추문에 떨고 있다. 먹고살기 힘들다, 자신감을 잃었다고 아우성이어도 어루만져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 역할도 못한 채 여권 실정에 반사이익만 즐기는 듯하다. 당 밖에서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씨 등이 대권 신경전이고, 당 내에선 여권이 낸 오픈 프라이머리카드를 놓고 갈팡질팡이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지금, 꼬인 남북문제와 한미, 한일, 한중관계, 안보·이념갈등, 경제 불안 등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난제들이 수두룩하다. 이래서 정치권은 냉혹한 현실과 절망한 민심을 직시해야 한다. 민심의 쓴 소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 희망을 나누고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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