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사안을 놓고 시비가 벌어질 때 방어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최후의 보루가 ‘법적 하자가 없다’란 말이다. 법이 그러하니 차라리 법을 원망하라며 지탄의 대상을 은근히 돌려놓는데 아주 유용하게 이용된다. 이 말 뒤에는 관습적이거나 도덕적 관점에서 비난은 받을지언정 처벌받을 정도로 법은 어기지 않았다는 뜻이 숨겨져 있다. 종국 시비는 법적인 문제로 옮겨진다. 논란거리를 제공했던 문제의 법이 개정되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불행을 잉태한 채 시간이 지나면서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각종 불법·편법등 의혹 난무

대덕연구개발특구(특구)내 우성이산에 건립중인 연구원동호인주택이 이 범주에 속한다. 연구원동호인주택에 대한 세인들의 눈초리가 곱지 않다.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불거진 갖가지 불법과 편법 등의 의혹들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해가며 과연 주택을 짓는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다음은 대덕특구내 녹지에서 건축행위가 왜 일반인에게는 불가하고 연구원에게는 가능했을까하는 차별대우도 한몫 거든다. 같은 대전시민인데도 연구원들은 특별법에 따라 특별한 특혜를 받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그동안 건축주들의 자격여부, 일부 건축주의 차명시비, 관련자들의 금품수수설, 개별주택의 아파트단지화 등등의 의혹들이 제기됐다. 이 대목에서 ‘법적 하자 없음’이란 방어벽이 둘러졌다. 그러나 불법 등 논란이 끊이지 않자 급기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불법이 있다면 밝혀질테고 또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래야만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만족하기에는 성에 차지 않는다.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꿈도 꿔보지 못하는 녹지에서의 건축행위를 가능케 했던 주범은 바로 대덕연구개발특구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특구법)으로 지목됐다. 특구법 시행령 제30조 5호의 규정에 따라 ‘입주기관의 장이 당해 기관의 종사자임을 확인한 자의 주거를 위한 연립주택 및 다세대주택’이 덕특구내 녹지에서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또 문화 및 집회·의료·교육연구 및 복지·운동·창고·공공용·관광휴게 시설등도 허용했다. 이 규정은 적어도 특구내 녹지보존에 관한한 독소조항이 틀림없다.

도대체 이런 규정이 왜 만들어졌는지 의문이 든다. 특구법 제36조에는 ‘쾌적한 연구환경을 유지하기 위하여’라며 그 목적이 적혀 있다. 시행령에는 녹지구역에서 지을 수 있는 시설을 열거했다. 특별법의 규정대로, 소위 ‘법적 하자가 없는’ 주택과 그 밖의 시설이 줄줄이 들어선다고 가정해보자. 녹지가 남아나겠는가. 그런 만신창이가 된 녹지가 과연 ‘쾌적한 연구환경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겠는가. 오히려 쾌적한 연구환경을 해칠 것이 뻔하다.

되레 쾌적한 연구환경 해쳐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법조문을 ‘쾌적한’ 대신 ‘효율적인’ 또는 ‘특구내 문화·복지시설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설사 상식이 잘못됐고, 또 특구 구성원들의 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치자. 그러면 특구내 기관 종사자들에게는 이런 저런 이유로 할퀴고 찢겨버린 녹지가 쾌적한 연구환경이란 말인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여기면 과학인들을 모독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들에 대한 예의도 물론 아닐 것이다.

기존의 대덕연구단지에는 연구시설부지가 없어 애로가 컸다. 특구법 제정의 목적중 하나는 이런 점을 감안, 길이 보존해야할 녹지지만 이 곳에 연구·교육시설 신축의 길을 튼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관련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특구법 개정을 논의중이라고 한다. 같은 대전시민인데 왜 차별대우하느냐는 우문(愚問)은 우리나라 과학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에 대한 무지의 소치(所致)로 치부해도 괜찮다. 다만 진정으로 특구의 쾌적한 연구환경이 유지되도록 특구법이 개정되기만은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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