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처리를 놓고 나라가 또 시끄럽다. 임명동의안의 법률적 오류 때문에 헌재소장 부재라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절차상 맹점을 발견하지 못한 청와대와 여당은 사과를 하고 야당지도부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머리를 숙이더니 급기야 치고받고 싸움만 벌이고 있다. 그 와중에 인사청문회특위소속인 한나라당 의원은 몰랐던 게 아니라 알았지만 문제를 삼을 일이 아니었는데 억울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청문회에서 절차상 하자를 찾아낸 조순형의원은 임명동의안의 표결이 무산된 후 후배 의원들에게 “젊은 의원들이 너무 공부를 안 한다”고 뼈있는 한마디를 했다. 조의원은 법조인 출신이 아니면서도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국회 도서관에서 자료를 뒤져가며 전 후보자 임명의 법률적 오류 발견했다. 인사청문회에 앞서 수시로 법령자료실을 찾아 전 후보의 과거 판결문을 비롯 헌법재판소 관련 법령 등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는 평소에도 일주일에 며칠씩은 도서관을 찾는데 열람실에 사실상 고정석이 있을 정도라니 그 열정은 본받아야 할 만하다.

국회 도서관은 수많은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데도 국회의원들의 발길은 뜸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국회의원들이 공부를 안 한다는 얘기다. 국민들에게 비치는 우리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머리만 맞대면 으르렁대는 싸움꾼으로만 비쳐진다. 이상적인 국회의 모습은 밤새도록 의사당에 불이 꺼지지 않는 것이다. 국회는 여야가 현안을 놓고 어떻게 해야 가장 국가와 국민들을 위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토론하고 때로는 설전을 벌이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국회의원들은 국가적 현안을 놓고 밤새워 토론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한쪽은 힘으로 처리하려 하고 한쪽은 몸으로 막으려고 싸움을 할 때만 밤늦게 까지 시간을 보내는 모습만 늘 보아왔다. 밤새 토론을 하려면 그만큼 많이 공부를 하고 알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의원들은 그렇게 밤새 토론을 할 만큼 연구를 하는지 묻고 싶다.

국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대책특별위원회’만 하더라도 ‘말로만 FTA 공부하는 국회’라는 지적이 나오는 걸 보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국민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하면 정부측 실무자들에게서 “의원님께서 잘 몰라서 그러시는데….”라는 답변부터 듣는다니 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물론 국회의원들이 전부 공부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국회도서관에서는 열심히 연구하는 의원 8명에 대해 ‘공부하는 의원’으로 시상을 하기도 했다. 또 국회 내에는 현재 의원연구모임이 62개나 있다. 이들 모임에서는 작년에 정책연구 보고서 94건, 법안 등 발의 427건, 세미나 공청회 간담회는 무려 889회나 개최를 했는데 한화갑의원이 대표로 있는 ‘농어업회생을위한국회의원모임’과 정덕구의원이 대표인 ‘시장경제와사회안전망포럼’이 최우수 의원연구단체 상을 받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들 연구단체에 대해 중진이나 실세를 중심으로 세력을 규합하는 것으로 활용될 여지도 있고 지원금을 목적으로 단체를 등록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아예 연구모임 자체를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의원들은 자신의 상임위 소관업무에 대해서는 때로는 정부 실무자들보다 더 훤히 꿰뚫고 있어야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감시기능은 없고 그저 법안 처리과정에서 손이나 번쩍번쩍 들어주는 거수기 노릇 밖에 못한다. TV에 얼굴이나 한번 비칠 요량으로 호통 치며 자리나 박차고 일어나는 모습만 보여서야 되겠는가. 전효숙 후보자의 청문회처럼 순조롭게 진행될 일을 의원들이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아 나라가 시끄러워지는 지경까지 만들었다는 비난은 받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김윤석<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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