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안이한 처리 갈등만 유발

실용성 추구 핀란드 본받아야

지난 1주일여 나라 안이 조용하다 싶었다. 온 나라를 흔들었던 ‘바다이야기’ 후속 뉴스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관한 공방도 지난 며칠간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둘러싼 보도만이 서서히 국민들의 관심과 긴장감을 고조시킨다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였다. 잠시나마 나라 안이 조용하다는 느낌을 준 이유는 무엇일까. 노무현 대통령 본인 말대로 그가 국내에 없었기 때문이다.

바람 잘날 없는 국내외 정세에 지친 나머지 신문이나 TV뉴스를 잠시 멀리한 사람이라면 노 대통령이 국내에 있는지조차 몰랐을 듯싶다. 노 대통령은 그리스, 루마니아 방문에 이어 핀란드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한 뒤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현재 워싱턴에 있는 상태다. 노 대통령은 그리스 방문 중 교민과의 대화 석상에서 “(일을 더 열심히 해서)시끄럽게 하겠다”고 호기롭게 발언해 눈길을 끌기도 했지만 외국에서 한 발언이어선지 더 이상 주목받거나 파장을 낳지는 못했다.

오는 16일로 예정된 노 대통령의 귀국이 다가오면서 조용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헌재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문제는 국회 법사위로 넘겼다지만 어떤 결론이 나든 여야 모두에게 마이너스라는 손익계산서만 남을 것이다. 헌재소장 후보자 공방은 여당이 관련 법조문을 졸속으로 해석하고 처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은 검토조차 하지 않다가 민주당 의원의 문제제기에 따라가야 하는 안이함을 보였기에 챙길 수 있는 점수가 없다. 따라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차후협상 개시 전까지는 전시작통권 문제가 주된 이슈로 부각되면서 나라 안을 다시 뜨겁게 달굴 것으로 보인다.

전시작통권 문제는 남북간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을 때 가장 바람직한 해법을 찾자는 노력의 일환이겠지만, 평시 나라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노 대통령의 해외순방 궤적을 거슬러 핀란드를 살펴봐야 한다. 핀란드는 세계경제포럼(WEF) 발표 국가별 경쟁력 1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평가 1위, 유럽연합 내 국내총생산(GDP)대비 연구개발(R&D)투자규모 2위 등의 기록을 갖고 있으며 1인당 GDP도 3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이다.

그렇다고 원래부터 잘 살던 나라는 아니다. 수백 년간 러시아와 스웨덴의 지배를 번갈아 받다가 1917년에야 독립했다. 이런 역사에다 1년의 절반 가까이를 추운 겨울날씨 속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인지 첫인상이 무뚝뚝하고 말도 없는 편이라는 핀란드 인들이 지난 20-30년간 이 같은 놀라운 성취를 거둔 것은 정부와 사회 각 부문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고 한다.

사회구성원간의 합의를 중요시한다는 핀란드 인들은 사회적 이슈가 제기되면 정부부처 공무원과 관련이익단체 대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워킹그룹을 구성해 해결한다. 워킹그룹이 다루는 주제들은 ‘계약직노동자들의 처우문제’ ‘육아휴직재원 마련을 위한 새로운 보험 신설문제’ ‘공장폐쇄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 등이다. 워킹그룹의 활동은 전모가 언론에 공개되며, 합의도출이 이뤄지면 국회로 넘겨져 입법화된다. 합의도출이 좌절될 경우 이전 규범이 유지되고 합의도출 이후 이의제기는 반칙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이 부분이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시기심과 질투심이 많다는 핀란드 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은 아닐까.

핀란드 정부는 이번 ASEM 개최지를 수도 헬싱키(인구 55만)가 아닌 내륙지역의 두 번째로 큰 도시 탐페레(인구 20만)라는 곳으로 정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이 아닌 대전이나 대구 같은 광역시쯤으로 정한 셈이다. 헬싱키시청이 강력히 원했는데도 탐페레로 정한 것은 중앙정부가 지출해야 할 회의장 임대료를 절약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철저하게 실용성을 앞세우는 것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류용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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