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충남역사문화원 심포지엄

고깔모양 관모에 관식을 부착해 화려하게 꾸민 백제와 신라 모관.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모관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던 두 나라의 모관은 고구려 금속제 관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립공주박물관의 기획전 ‘한성에서 웅진으로’ 일환으로 최근 충남역사문화원이 개최한 제6회 충남역사문화원 심포지엄에서 ‘신라와 백제 모관의 비교’로 주제발표에 나선 이한상 교수(동양대 문화재학과)는 “충남 공주 수촌리 4호분 모관 앞 장식물에 투조(透彫)된 용과 봉황, 가지에 투조된 삼엽문은 중국 집안 출토 고구려제 금동관식을 연상케 한다”며 “백제의 모관문화도 신라와 같이 고구려에서 그 계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백제나 신라의 모관은 외형과 제작기법상의 차이가 현저하지만 고깔모양 관모에 관식을 부착해 화려하게 꾸몄다”며 “수촌리 4호분과 황남대총 남분 출토품의 연대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사한 모관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제 모관은 관모에 부착하는 장식의 형태나 위치가 신라의 모관과는 차이가 있다.

이 교수는 “신라 관모는 관모와 관식이 각각 출토되는 경우가 많으며 금속제 관모와 관식이 결합돼 모관을 구성하지는 않았다”며 “전면에만 장식이 들어가 있는 신라 모관과는 달리 백제 모관은 전후면에 장식이 새겨져 있다”고 분석했다.

재질과 문양도 다르다. 신라의 모관은 황남대총 남분, 금관총, 천마총에서 출토된 소량의 금제품과 함께 왕릉에 준하는 대형무덤의 금동, 백화수피제(白樺樹皮製) 관모, 은제 관식 등이 있다. 문양의 경우도 황남대총 남분 관모의 당초줄기처럼 간략화된 용문, 금관총 관모의 T자문·능형문·역하트문·어류문 등이 투조돼 있다. 반면 백제 모관은 모두 금동제로 재질은 신라에 비해 다양하지 않은 반면 모관을 구성하는 문양판에 투조된 용이나 봉황, 당초문, 어류문 등의 문양은 신라에 비해 훨씬 사실적이다.

출토 부위는 신라의 경우 왕경 경주에서는 모관 대부분은 유물수장부에서 출토됐고 피장자의 머리 쪽에서 확인된 것은 황오리 16분 1곽이 유일하지만 지방에서는 머리쪽에서 출토된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지방에서는 대관과 모관이 동시에 출토된 경우는 적었으나 경주에 비해 다양한 지방무덤의 모관 부장양상 보이고 있다는 것. 백제 모관의 경우 부장 위치나 방식은 다양하다. 수촌리 1호분, 4호분은 피장자 머리 부위에서 출토됐으며 그 중 1호분은 모관 하부 관테와 두개골 흔적이 연접돼 있어 착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산 부장리 5호분은 피장자의 흉부에서 발견됐고 고흥 안동고분은 발 쪽에서 금동식리 1점과 함께 출토됐다. 이 교수는 백제 관모는 중앙에서 멀어지면서 직접 쓰지 않은 형태로 부장됐다고 보았다.

이 교수는 “신라 모관은 제작지가 중앙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백제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며 “제작기법의 숙련도가 높고 금속장신구, 중국도자의 세트부장을 볼 때 일체 위세품을 중앙으로부터 하사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南尙賢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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